이렇게나 섬세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그 ‘배우 김윤석’(51)이란다. 배우로 ‘1987’, ‘암수살인’ 같은 선 굵은 영화를 찍는 동안 ‘감독 김윤석’으로는 완전히 다른 색깔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성년’은 부모의 불륜을 알게 된 두 10대 여고생이 어른보다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 있음 직한 캐릭터들과 그들이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김윤석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9일 만났다.
“아직 미학적인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해 드라마와 인간의 이야기로 승부를 보고 싶었습니다.”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영주(염정아), 내연남의 아기를 조산한 미희(김소진)가 겪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부모의 불륜을 마주한 여고생들의 혼란을 아침드라마식 불륜 같은 질척거림 없이 산뜻하게 그려냈다. 여자보다 여자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 것 같다고 하자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여성 작가와 함께 작업했고 대사에도 등장인물 간 내면의 전쟁이 드러나게끔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염정아 김소진 두 배우가 공간을 장악하는 연기를 보여줬어요.”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 역의 두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데도 특별히 공을 쏟았다. 3차까지 남은 30여 명 모두 1시간씩 일대일 면담을 했을 정도. 김희원 이희준 염혜란 등 쟁쟁한 조연들도 그의 열정에 힘을 보탰다.
김윤석 본인은 모든 문제의 시발점, 지질하기 그지없는 불륜남 ‘대원’으로 출연한다. 대원이 가장 많이 반복하는 대사는 “미안하다”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어떻게든 상황을 현실적으로 수습하려 노력하는 두 여고생의 모습이 무책임한 대원과 끊임없이 대조된다.
“‘성년’은 운전면허증 같은 자격증이 아니잖아요. 나이가 들어도 외부의 시선에 무뎌지지 않고 긴장감을 놓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결말은 다소 도전적이다.
“작가랑 결말을 서른 번 고쳤습니다. 아이들을 기성세대가 만든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았어요. 이 새로운 세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기성세대에게는 충고할 자격조차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차기작에 대해 묻자 그는 “이번 작품이 은퇴작이 될까 걱정”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라마와 캐릭터로 만든 영화들은 언제 꺼내 봐도 감탄스러워요. 다음 작품도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요. 극복의 순간이든, 존엄의 순간이든, 진정성을 가질 때 이야기가 가장 빛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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