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본상을 받으며 케이팝의 새 역사를 썼다. 방탄소년단은 1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9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듀오·그룹’상을 받았다. 머룬파이브, 이매진 드래건스, 패닉 앳 더 디스코, 댄 앤드 셰이 등 쟁쟁한 현지 후보들을 제치고 수상한 쾌거였다.
이날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이 수상자로 호명되자 뜨거운 환호가 객석을 메웠고 갈채 속에 멤버들이 무대에 올랐다. 리더 RM은 “아미(팬클럽)와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 감사하다. 대단한 아티스트들과 이 무대에 같이 서 있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함께 공유한 작은 것들 덕에 가능했다”고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이어 RM은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힘이 대단하다. 하지만 우린 6년 전과 같은 소년들이다.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꾸고 있다”며 감격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그래미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에 속한다. 한국 가수의 역대 성과는 본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싸이가 ‘강남스타일’ 열풍에 힘입어 2012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뉴미디어’ 부문을, 2013년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스트리밍 송(비디오)’ 부문을 수상한 것만 해도 낭보로 여겨졌다.
세계적인 팬덤을 구축한 방탄소년단에도 본상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인기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받았고,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는 올해까지 3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대부분 팬 투표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반응이 수상을 결정짓는 부문이었다. 특히 전문가들은 빌보드의 단골 정상 그룹 머룬파이브나 미국 시장에서 대중성이 확고한 패닉 앳 더 디스코를 제친 것에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이번 ‘톱 듀오·그룹’ 수상은 가상세계인 SNS에서 출발한 열풍이 미국 현지 대중에게까지 문호가 열리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진출 초기에 라틴과 아시안 계열 10, 20대의 팬 비중이 높았다면 이제 방탄소년단의 열풍은 주류 백인 사회, 20대 이상으로도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빌보드 차트 성적,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본상을 받은 것은 차원이 다른 수확”이라며 “종전에 받은 SNS 관련 상들이 아미의 위세를 증명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평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빌보드 차트를 운영하는 빌보드에서 주최하는 만큼 상업적 성적이 중요하다. 음반과 디지털 음원 매출, 라디오 방송 횟수, 공연 매출, SNS 반응이 주요 척도다. 미국리코딩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를 모아 음악성에 방점을 찍는 그래미 어워즈가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면 빌보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는 대중성의 지표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부터 3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렸다. 빌보드 싱글차트에도 두 곡을 10위권에 랭크시켰다. 월드투어의 규모도 컸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 홈구장인 ‘시티필드’를 포함해 대규모 순회공연을 벌였다. 온라인상의 특이한 현상으로 보인 붐의 크기를 수치로 증명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4, 5일 로스앤젤레스 로즈볼을 시작으로 시카고, 뉴저지를 돌며 미국 스타디움 투어를 진행하고, 6월 1일에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갖는다.
방탄소년단에 큰 상을 준 것이 미디어의 대변혁 속에 빌보드의 고민과 청사진을 짐작하게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빌보드는 마이너리티와 SNS의 힘을 인정하며 밀레니얼 세대를 포용하는 방법으로 일찌감치 케이팝을 열심히 다뤘다. 영미권에서 새 물결로 볼 수 있는 케이팝에 조명을 비춤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끌어안는 제스처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이대화 평론가도 “신곡 ‘Boy With Luv’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첫 주 8위를 찍은 뒤 다음 주 바로 40위로 떨어진 점을 보면 아직 대중 전반이 BTS에 열광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BTS와 아미가 지닌 SNS의 힘을 매체의 영향력으로 흡수하려는 빌보드의 전략적인 선택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가 최고 영예인 ‘톱 아티스트’를 포함해 12개 부문 트로피를 석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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