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조작으로 혜택 본 멤버 소속사 안 밝혀져…궁금증 확산 신뢰 잃은 오디션 프로…기획사 내부 육성 중요성 다시 확인
2009년 케이블채널 엠넷 ‘슈퍼스타K’ 이후 10년 동안 쌓여온 ‘오디션 성공 신화’가 무너졌다.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방영한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프듀X) 제작진의 투표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를 주도한 연출자 안준영 PD와 김용범 책임프로듀서(CP)가 구속됐다. 이들이 일부 연예기획사와 결탁했다는 의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오디션에서 최우선시해야 할 공정성을 훼손했다. 이는 부정과 비리로 시청자에게 비치고 있다. 연예계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동시에 향후 추이를 주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오디션 열풍 주역의 추락
오디션 프로그램은 ‘슈퍼스타K’ 이후 지상파·케이블·종합편성채널 등 모든 방송사가 한번씩은 꼭 다룬 인기 아이템이다. ‘슈퍼스타K’가 일으킨 신드롬급의 인기와 화제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예능프로그램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했다. 이후 10년 동안 각 방송사가 꾸준히 활용하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프로듀스X101’ 투표 조작 사태는 10년간 쌓은 탑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프듀X’는 일본 버전이 현지 지상파 채널 TBS에서 방영 중이어서 국제적 망신까지 당하게 됐다.
그 중심에 현직 연출자가 있다는 점에 시청자들의 충격은 더욱 크다. 일부 기획사로부터 여러 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안준영 PD는 논란이 되자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까지 경찰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획사가 투표 조작으로 혜택을 본 멤버가 소속된 곳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향응을 받은 것만으로도 의혹의 시선은 확산되고 있다.
안 PD와 김용범 CP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주도한 주역이다. 안 PD는 ‘프로듀스’ 시즌 1∼4를 모두 연출했으며, 김 CP는 시즌2부터 총괄 기획자로 합류했다. 앞서 김 CP는 현업PD 시절 ‘슈퍼스타K’ 시즌1∼3 연출을 맡았으며, 안 PD와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들은 ‘악마의 편집’과 긴장감을 자극하는 연출 방식 사이에서 논란을 사기도 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장르에서 강점을 드러내며 입지를 굳혔다.
일각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 특성상 동일한 연출자가 프로그램을 오래 맡는 시스템을 경계하고 있다. KBS 제작본부의 한 관계자는 6일 “노하우와 전문성 등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 권력이 쥐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며 “그 부정적 형태가 바로 ‘프듀X’의 투표 조작이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 가요 생태계 정화의 희망
가요계는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이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관계자들은 음원과 음반의 기획·제작·유통까지 아우르는 대기업 CJ ENM의 방송 제작진이 일부 연예기획사와 결탁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이 과정에서 연습생들의 꿈까지 박탈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힘 없는’ 중소형 기획사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입지가 좁은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시선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이제 ‘프로듀스’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한 방’에 뜨는 방식은 통하지 않게 됐다”면서 “기획사들의 자체 육성 시스템 안에서 연습생들이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 데뷔하는 방식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힘을 과시해온 케이팝의 비약적 성장은 오랜 연습생 기간을 거쳐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쌓은 이들이 이끌고 온 힘”이라며 “방송사가 나서서 가수를 ‘제작’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