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광해군일기’ 100권의 광해 8년(1616년) 2월28일자에서 이 같이 적고 있다. 이후 15일 동안 광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상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시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피해 광해는 자신을 대신할 닮은꼴의 ‘대역’을 찾아 나섰다. 도승지 허균을 앞세웠다. 허균은 저잣거리에서 만담으로 밥 빌어먹고 사는 광대 하선을 광해 대신 용상에 앉혔다.
용상에서 내려다보는 현실, 하선의 시선에 그것은 헛된 사대주의였고, 사리사욕에 눈먼 관료들의 부정으로 가득한 부패의 세상일뿐이었다. 이를 그릇된 일이라 하는 하선에게 허균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일 뿐이다”고 말했다. 허균은 현실의 정치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실상 권력을 중심에 두고 오로지 신하된 자로서 취할 처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가진 만큼 세금을 내도록 하고, 무고한 백성을 대국의 용병으로 보내려 하는 헛된 사대주의를 꾸짖으려는 하선을 바라보며 허균은 왕이 되라고 말했다. 하선의 모습에 진짜 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꿈이라면. 하지만 하선은 “내 꿈은, 내가 꾸겠소이다”며 고통스런 천민의 현실로 되돌아간다. 허균은 마침내 하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선에게서 내비친 왕은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이었다. 어떤 화려한 수식도 더 이상 필요 없다. 그저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상”(최용기 커리지필름 대표) 혹은 “지도자의 덕목”(여한구 캐피탈원 대표)으로서 다시 소중해지는 까닭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연출자 추창민 감독은 광해와 하선의 서로 다른 모습을 뛰어나게 그려낸 배우 이병헌과 허균 역의 류승룡에게서 이 같은 메시지를 찾았고, 1200여만의 관객이 이에 호응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시리즈는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100인의 영화 전문가들이 꼽은 최고의 작품을 소개해왔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끝으로 연재를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