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 훈훈한 웃음과 눈물을 안긴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연출 차영훈)으로 행복한 두 달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전한 드라마의 메시지처럼, ‘동백꽃 필 무렵’은 주인공 뿐만 아닌 모든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쌓아 풍성함을 더했다.
단순히 주연을 위해 소모되는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이야기와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물들을 그렸고, 탄탄한 공력의 배우들이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신나게 뛰어 놀았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이 모든 인물들을 이해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봤기에 가능했다.
극의 배경인 옹산을 설명하는 건 일명 ‘옹벤저스’ 아주머니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동백(공효진 분)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줄 알았더니 은근슬쩍 뒤에서 챙겨주는 준기네 게장 CEO 박찬숙(김선영 분)을 중심으로, 무뚝뚝해보이지만 속 깊은 떡집 사장님 김재영(김미화 분), 일명 ‘알타리 아줌마’라는 별명이 붙은 채소가게 아줌마 오지현(백현주 분), 그리고 옹벤저스의 귀염둥이 막내 백반집 정귀련(이선희 분) 등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캐릭터로 무장했다.
이들은 마치 우리네 동네에 있을 법한 친근한 비주얼로 등장해 웃음을 안기더니, 끝내 기어코 시청자들을 울먹이게 했다. 동백과 함께 옹산의 골칫덩어리였던 까불이를 잡기도 했다.
시청자들에 ‘옹벤저스’(옹산 어벤저스)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주목받은 배우들은 누구일까. 지난 21일 끝난 ‘동백꽃 필 무렵’의 종방연이 있던 날, 이들을 만났다. 옹산 패션은 과감히 두고 ‘도시’ 패션으로 차려입었다. “이거 지금 상경한 느낌 나지 않냐”면서 시종일관 여고동창모임처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백현주 김미화 이선희와의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대화다.
-각자 오랜 경력이 있지만 ‘동백꽃’으로 처음 각인한 시청자도 많다. 각자 어떤 인생을 살다가 옹산에서 만났나.
▶(이선희) 난 예대 극작과를 나와서 연극을 했다. 예전엔 연극하다가 매체(TV, 영화) 연기를 한다고 하면 배신자가 되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다. 나도 드라마를 하면서 ‘백일의 낭군님’ ‘추리의 여왕’ 등에 출연했고 이번에 ‘동백꽃 필 무렵’에 함께 하게 됐다. 처음에는 떡집 주인이었는데 (김미화) 언니가 들어오면서 밀려난 것 같다.(웃음) 귀여운 막내 백반집 안주인으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극작과를 하다가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나.
▶(이선희)그러게나 말이다.(웃음) 학교에서 대본을 쓰려면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연기도 해보라고 했다. 졸업작품을 냈더니 온통 빨간 줄 투성이었다. ‘너는 마흔까지 더 배워야돼’라고 조언을 들었다.(웃음) 울먹이면서 ‘알겠다’고 하고 극단에 들어가서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배우가 됐는데 연기가 너무 좋다. 지금도 작품은 쓴다. ‘보고 싶습니다’라는 작품도 내가 썼는데 그 연극도 잘 됐다.
▶(백현주) ‘보고 싶습니다’를 네가 썼어?
▶(김미화) 네가 다르게 보인다. 그 작품 진짜 좋은데.
-김미화씨도 연극을 하다가 ‘동백꽃’에 합류했다고.
▶(김미화) 나는 대구시립극단에서 15년간 연극을 했다. 내 평생 연극만 할 거라고 생각했고 대구를 지키려고 했는데.(웃음) 우연히 ‘힘쎈여자 도봉순’에 출연했는데 그 뒤로 운이 좋게 작품이 이어졌다. 원래 시립극단 소속 배우는 외부 활동이 안 되는데 작은 역에서 조금 배역이 커졌다. 그 뒤로는 극단에 양해를 구했고 지금은 극단을 나왔다.
-그 뒤로 ‘구해줘2’에서는 대구댁으로 나오기도 했고.
▶(김미화) ‘품위있는 그녀’라는 작품에서는 무당 역할을 했다. 되게 짧게 나왔는데 임팩트가 있었나보다. 그 뒤로도 좋은 작품들을 많이 했다. ‘구해줘2’에서는 대구댁이었고, ‘은주의 방’에서는 김선영 배우와도 만났다.
-연극을 하면서 어땠나.
▶(백현주 이선희) 사실 시립극단 소속이면 굉장히 좋은 환경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편이다.
▶(김미화) 연극 정도를 걸었다.(웃음) 사실 힘들게 연기하는 친구도 있지만 나도 그랬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나는 크게 힘든 건 없었다’고 하니 기자가 많이 놀라더라.
▶(이선희) 아우, 이제 연극하면 힘들다는 이야기도 좀 그만해야 한다. 어느 업계나 좋은 환경과 아닌 환경이 있다. 연극도 큰 극단과 작은 극단이 있고. 연극이 고생과 연결되는 게 꼭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시절 힘들기도 했지만 그게 내 청춘이고 자양분이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하기 싫더라.
-백현주씨는 최근 드라마에서 많이 만났다.
▶(백현주) 나도 연극을 하다가 영화 이어서 드라마까지 하게 됐다. 사실 공연과 매체 연기를 병행하기 힘들다. 공연에 올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좋게 본 캐스팅 디렉터 분이 있었고 영화 오디션을 제안해줬다. 몇 번 하다 보니 오디션을 하는 게 재미가 없어서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몇 줄 되지 않는 대본으로 인물 파악도 힘들고 뭐랄까 연기의 재미가 안 느껴졌다. 그러다가 지명도 있는 배우에 밀려서 까이기도 하고, 밀리기도 했다. 이후 ‘송곳’을 시작으로 드라마를 하게 됐다. 그 이후로 작품이 이어졌다.
-옹벤저스의 팀워크가 진짜 좋은 것 같다.
▶(백현주) 솔직히 처음에는 2시간마다 운행하는 배인줄 알았는데 참여해보니 완전 노아의 방주같더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너무 많았다. 깜짝 놀랐다.
▶(이선희) 연극 연습실 같은 느낌이었다.
▶(백현주) 현장에 가면 뭔가 다들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처음에는 이런(작은) 배역에 이 정도 경력의 배우를 기용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다. 연기하는 걸 보면 알지 않나. 정말 연기 잘하고 힘 좋은 배우들이 가득해서 차고 넘치는 느낌이었다. 제작진이 이렇게 모든 배역에 힘을 줘서 꾸리는 게 신기했다. 알고 보니 작가님이 이 작품을 오래 준비했고 모든 인물의 전사를 다 설정했다고 하더라. 그러니 잘 표현해줄 배우들을 찾은 것 같다. 애정이 느껴졌다.
-애드리브는 많았나.
▶(이선희) 애드리브는 많이 없는 편이었다. (화제가 됐던) 곽찬숙의 ‘넌 나인 써? 난 텐 써’ 이것도 대본에 그대로 있던 거다. 대본이 디테일하게 쓰인 편이다.
▶(김미화) 아무래도 추리나 복선이 있다 보니 애드리브가 방송에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니고, 우리끼리 현장 분위기 달굴 겸 하는 애드리브는 많다.
-‘동백꽃’ 전후로 뭐가 달라졌나.
▶(이선희) 주변에서 많이 알아보진 않고 긴가민가한 느낌으로 보신다.(웃음) 일단 난 이제야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게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사실 연기를 오래 하다 보면 소모적으로 쓰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슷한 캐릭터의 반복이거나 여러 의유로.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조금 더 성실하고 탄탄하게 역할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연기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옹벤저스 언니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다. 이제 용기를 내서 자신감있게 연기하려고 한다.
▶(김미화) ‘도봉순’이 2016년 작품이니 비교적 짧은 기간 여러 작품을 한 것 같다. 나는 이제야 현장이 조금 편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워서 얼어 있었다. 이제 어떤 역할을 하든 두려움없이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동백꽃 필 무렵’이란.
▶(백현주)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갔던 느낌이다. 이 작품이 말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이런 동네에서 살려면, 까불이가 나오지 않으려면, 우린 뭘 해야 할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작가님이 지어놓은 살기 좋은 동네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렸던 느낌으로 남았다.
▶(김미화) ‘동백꽃 필 무렵’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같더라. 어릴 땐 정말 사람냄새나게 살았잖나. 부대끼고, 옆집에서 같이 밥 먹고.(웃음) 그래서 ‘동백꽃’은 내게 드라마 대본보다 소설책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사 하나가 손을 잡고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이선희) 나는 고맙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백이가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고맙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대사를 하잖나. 그런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이런 좋은 드라마 보여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동백꽃 보는 낙으로 산다. 고맙다’는 말. 동백이도 아닌데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다. 나 역시 너무 고마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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