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성-디테일의 힘… 세계주류가 된 한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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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한류가 도래했다(The Korean wave has definitely arrived).”

미국 국무부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이 11일 개인 트위터 계정을 통해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 충분히 4개 부문 상을 받을 만했다”고 축하하며 덧붙인 이 표현은 K컬처(한류)에 있어 영화 기생충이 갖는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기생충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점령은 K컬처의 새로운 ‘퀀텀 점프(quantum jump·대도약)’의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 K드라마로부터 시작된 1차 한류, 아이돌 그룹과 싸이 ‘강남스타일’, 방탄소년단(BTS) 등으로 대표되는 K팝의 2차 한류에 이어 3차 한류의 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BBC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한국에 상 이상의 무언가를 의미한다. 그건 바로 문화적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쇼크, 한국의 성장하는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생충의 수상이 아시아 국가의 핵심 소프트파워가 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또 다른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직 ‘기생충’을 보지 못했다면 당장 나가서 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부러움과 함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생충의 수상은 (내수 시장이 작아 세계로 진출한) 한류 아이돌의 활약과도 일맥상통한다”며 “자국 시장에 안주하는 일본 영화계가 (해외 시장을 뚫은) 봉준호 감독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영어 영화가 아닌 작품이 세계에 통용된 의의가 크다. 일본의 젊은 제작가도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10일 석간 1면에 기생충의 배경이 된 반지하 주택을 조명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 K드라마-K팝 이어 ‘K무비 新한류’… 북미시장 공략 거세질듯 ▼

세계주류가 된 한류
블룸버그 “한국, 소프트파워 과시”… 美국무부 대변인 “한류 확실히 도래”

기사에는 서울 마포구와 관악구의 반지하 주택의 내·외부 사진과 함께 반지하 주택의 역사와 배경이 담겼다.

기생충이 아직 개봉되지 않은 중국에서는 검열에 대한 강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2017년부터 한류 콘텐츠 수입을 중단하는 이른바 한한령(限韓令) 이후 영화를 포함해 새로 나온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공식 상영하거나 방송하지 않았다. 중국 지식공유 사이트 즈후(知乎)에는 “왜 중국은 기생충 같은 영화를 못 만드나”라는 질문에 “검열이 창작자의 손발을 묶고 있고 영화를 만들어도 상부에서 상영을 못 하게 한다”는 답이 달렸다.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愛奇藝)는 ‘기생충’을 곧 상영하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CJ 관계자는 “아직 아이치이와 판권 계약을 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적인 디테일이 가득한 기생충의 북미 흥행과 오스카 4개 부문 석권에 대해 북미 현지에서는 오히려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미국 언론들은 한국 문화가 이제 마이너의 특이한 문화가 아닌 주류 문화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CNN은 “최근 K팝 그룹들이 유튜브의 신기록을 세우고 ‘투나이트 쇼’나 ‘굿모닝 아메리카’ 같은 주류 프로그램에서 공연하는 미국 음악계의 헤비급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BTS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보이그룹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 행사에서 “BTS가 나보다 3000배는 더 영향력이 있다. 한국인은 매우 역동적이기 때문에 훌륭한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DNA에 문화적 저력이 숨어 있음을 당당하게 알린 것이다.

약 10년 전부터 본격화한 1차 한류와 이후 2차 한류 초기만 해도 K컬처는 마니아들이 즐기는 마이너 장르에 속했다. ‘강남스타일’이 반짝 뜬 뒤에는 더 진전이 없어 한류가 식었다는 진단도 한때 나왔다. 하지만 BTS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한류는 세계 대중문화의 심장부인 미국의 주류로 성큼 다가섰다. 해외 팬들은 ‘K팝 사전’까지 제작하며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린다. 로스앤젤레스(LA)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K팝 콘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미네소타주 작은 도시에 사는 현지 팬들은 대륙을 가로지른다.

기생충은 미국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미국 주류 문화를 파고들었다. ‘어벤져스’ 시리즈 중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 에번스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봉 감독의 팬이라고 밝혔다. 에번스와 함께 영화 ‘설국열차’에 출연하고 ‘옥자’에도 나온 배우 틸다 스윈턴은 봉 감독을 위해 영국에서 열린 기생충의 스크리닝 행사를 적극 홍보했다. 기생충이 대중문화 해외 진출의 마지막 장벽으로 꼽히는 영화 시장을 무너뜨렸다. 영화는 음악, 드라마와 비교해 수출 콘텐츠 중 파급력이 가장 약한 상품으로 꼽힌다. 멜로디로 정서를 전달하는 음악이나 집에서 편히 즐길 수 있는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비용을 지불하고 극장에 가는 수고를 감수하며 자막과 정서의 차이까지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배급사 NEW의 해외 자회사 ‘콘텐츠판다’ 관계자는 “한국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던 북미 배급사들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로 미팅 문의를 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와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도쿄=김범석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한류#영화 기생충#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k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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