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남자의 자격’ 영화 ‘피에타’ 도전의 연속 “노하우? 날 믿지 않고 주변 사람들 의견 경청” ‘더킹’서 40대 외모 가진 노인…“나도 궁금했다”
21년차 연기자 이정진(42)은 사십 줄에 손에 꼽을 ‘변곡점’을 만났다. 12일 끝난 SBS ‘더킹:영원의 군주’다. 드라마 종영 직후 서울시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진은 “왕족이면서 40대 외모를 가진 70대 노인 악역은 처음”이었다며 “내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라고 돌이켰다.
● “‘더킹’, 6주간 하루 계란 2개만 먹는 고행길”
그는 극중 대한제국 황제 이민호의 큰아버지 이림 역을 소화했다. 동시간대에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두 세계가 존재한다는 ‘평행세계’의 비밀을 알고 이를 이용해 역모를 꾀하는 인물이다. 시간을 넘나드는 캐릭터로 40대 외모와 70대 노인의 관록을 한꺼번에 표현해야 하는 일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엔 분장도 해보고 별의별 방법을 시험해봤죠. 근데 잘 안 통하더라고요. 제일 좋지 않은 방법을 택했어요. ‘생으로’ 굶는 것이요.(웃음) 하루에 계란 2개, 우유 한 잔으로 버티고 담배도 엄청나게 피웠어요. 6주간 9kg을 빼서 69kg이 됐죠.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주름이 지면서 노인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말투, 걸음걸이도 왕족으로 살아온 이림을 표현하기 위해 다 바꿔버렸어요.”
‘스타 작가’로 통하는 김은숙 작가와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 “‘칼날’처럼 모든 게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대본”을 받고 놀랐다고 한다. 김 작가의 작품으로서는 기대 이하였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내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 역할을 소화하기에도 벅찬데 다른 말을 들을 겨를이 있나요.(웃음) 제가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피해를 안 줄 수 있을까’예요. 배우로서 앞으로 나아갈 영감을 받으면 제겐 그만이죠. ‘더킹’은 그런 면에서 만족스러웠어요.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다른 작품들이 계속 들어오는 걸 보면 제 연기가 썩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에요. 하하하!”
● “우연히 시작해 23년…잘 버텼죠.”
23년 전, 이정진은 연예인의 ‘연’자도 꿈꾸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모델로 데뷔한 연기자 장동건, 원빈 등을 보며 “집에나 가자”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원호 PD가 연출한 KBS 2TV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이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도 마찬가지다. 주변 모두가 “뜻밖이다”고 놀란 ‘의외의 선택’들이 지금의 이정진을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참 잘 버텨온 거예요. 연예인은 비행기와 비슷해요. 수많은 사람을 태운 커다란 여객기, 높고 빠르게 오르는 제트기 등등이 있죠. 저는 천천히, 사고 없이 쭉 날아온 경비행기 같단 생각을 해요. 그런 나 자신에 만족하고요. 좋은 시기와 힘든 시기를 잘 겪어낸 스스로 ‘잘 버텼다’는 칭찬만은 꼭 해주고 싶어요.”
21년 동안 험난한 연예계를 잘 버텨온 그만의 노하우는 딱 하나다. “나를 믿지 말자!” 스스로를 믿는 순간 ‘사고’가 난다고 여긴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아집’을 경계하는 습관이 깃든 한 마디이다.
“물론 저도 아직 ‘살아남는 법’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후배 연기자들에게 조언을 남기기엔 한참 일러요. 아직은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