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당사자인 우리의 상황 떠올라
정치적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난 사랑받는 배우, 세상의 관심 당연
1999년 잠수함에 올랐다. 비뚤어진 애국심에 맞서 총구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21년 뒤, 다시 잠수함. 하지만 이번엔 갇혔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중재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막으려는 북한 강경파에 납치됐다. 비뚤어진 애국심에 저항하며 총구에 정면으로 맞섰다.
배우 정우성(47)은 1999년 영화 ‘유령’의 잠수함에 올라 전쟁의 위기에 놓인 심해로 빠져들었다. 21년의 세월이 지난 뒤 29일 개봉한 영화 ‘강철비2:정상회담’(강철비2, 감독 양우석·제작 스튜디오게니우스우정)에서는 전쟁의 위기를 막으려 애쓰는 한국의 대통령이 됐다. 그를 가둔 잠수함, 아니 그가 이끄는 잠수함은 이제 비극의 심해에서 부상해 평화의 바다로 나아간다.
“배우로 받아온 사랑,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정우성은 “내 영화를 보고 감정이 올라와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기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최근 ‘강철비2’ 시사회를 마친 뒤 울컥한 심정으로 얼핏 눈가의 물기를 내비쳤다.
“분단상황의 당사자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불행의 시간에 대해 여러 생각이 치고 올라왔던 것 같다”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비극적 현실에 놓였지만, 정작 “이 땅의 주인인 우리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 주인으로서 그 권리를 존중받지 못했던” 아픔을 되새겼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정치적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거듭 말했다. 분단현실과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정세를 그린 영화인만큼 그가 내민 다소 우려의 말은 충분한 고민처럼 보였다.
다소의 우려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수년 동안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일해 오면서 적극적으로 내어 보인 사회적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배우로서 마땅히 지녀야 한다고 믿는, “세상의 사랑”에 대한 되갚음이자 보답이라고 그는 말한다. “세상의 사랑을 받는 배우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 직업인이자 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관심”이다. 또 세상과 “소통”해가는 또 다른 과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배우로, 감독으로, 기획자로…아직 휴식은 없다
이제 40대 후반에 들어선 그는 “나이 들어가는 기성세대로서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내 경험을 들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듣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교훈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맨 땅에 헤딩했던” 21년 전 ‘유령’의 시절에 비해 월등한 영상 기술력으로 더욱 알찬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기까지 세월을 지켜본 그는 이제 그 시간 속에서 무언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 맞는다면, 이전과 이후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배우로 서 있다. “카메라 앞에서도 전체를 보는 버릇을 키워왔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게 “현장 전체를 보는 게 이제 어렵지 않게 됐다”는 정우성은 감독으로서도 나서고 있다. 연출작 ‘보호자’의 내년 개봉을 앞두고 한창 후반작업 중이다. 또 영화 제작사를 겸하는 매니지먼트사를 이끄는 기획자이자 사업가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 지나쳐온 세월, 그 숱한 경험 안에서 그는 여전히 “끊임없이 새로운 기분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새롭게 쌓아갈 또 다른 경험 속에서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그는 잠시의 휴식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서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은 채 운전하고 가다 어딘가에 도착해 쉬고…”라며 일상에 대한 소박한 희망을 드러냈다. “그래서 지방촬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평화와 통일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로부터 비로소 빠져나오는 듯, 맑은 표정이 한껏 묻어났다.
정우성은?
▲ 1973년 3월20일생
▲ 1991년 모델 데뷔
▲ 1994년 영화 ‘구미호’로 연기 데뷔
▲ 1997년 ‘비트’·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남우상
▲ 1998년 이후 영화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 ‘똥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중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