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역할에 ‘헉’…대체 얘는 왜 이런 선택을 한거냐 묻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5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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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비규환 배우 정수정


배우 정수정(26)보단 아이돌 그룹 f(x)의 크리스탈이 더 익숙하다. 12일 개봉하는 ‘애비규환’은 대중들에게 배우 ‘정수정’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킬 영화다.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도도한 표정으로 노래하던 크리스탈은 맨 얼굴에 질끈 묶어 올린 머리,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 임신부 ‘김토일’의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정수정보다 두 살 많은 최하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애비규환은 연하 남자친구 ‘호훈’(신재휘)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자 결혼을 하게 된 대학생 토일의 이야기다. 토일은 임신 사실이 밝혀진 뒤 어머니와 양아버지로부터 “넌 대체 누굴 닮아 이 모양이냐”라는 얘기를 듣자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 호훈도 실종되면서 토일은 결혼을 할지 고민하는 기로에 놓인다. 제목처럼 토일이 10여년 만에 찾아 나선 ‘친 애비’와 어머니의 재혼 후 토일을 사랑으로 키운 ‘지금 애비’, 토일이 뱃속 아이의 ‘예비 애비’와 한 바탕 소동극을 거치며 토일은 이혼가정, 결혼, 임신 등 자신을 정의하는 수많은 단어들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답을 찾아 나간다.

첫 영화 주연으로 임신부를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정수정은 “고민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입을 열었다.


“처음에 임신부 역할 제안이 들어왔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헉’ 소리를 냈을 정도로 놀랐죠. 지금까지 연기해온 것과 너무 다르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본을 읽는 순간 이 역할을 안 할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이야기가 너무 재밌기도 했고, 앞으로 연기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기에 저한테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김토일을 구현하는데 가장 먼저 고민한 건 ‘어떻게 하면 진짜 임신부처럼 보일까’였다. 최 감독은 정수정과의 첫 미팅에서 “볼이 너무 핼쑥하다. 5개월 차 임신부처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출연 결정 직후 다이어트를 중단했다. 촬영 내내 불룩한 배를 연출하기 위해 복대를 찼다.

“복대가 너무 가벼우면 자꾸 돌아가서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복대를 차야 했어요. 없던 게 생기니 목부터 시작해서 허리까지 굉장히 아프더라고요. 서 있을 때도 허리를 잡고 배를 앞으로 내민 ‘펭귄자세’로 서 있다보니 온 몸이 틀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스크린으로 본 토일이가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진짜 임신부 같아서 전 너무 좋던데요?”


현실적인 외모만큼 많이 고민했던 건 토일의 성격이다. 토일은 한 단어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인물이다. 임신한 게 무섭지 않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난 무서운 것보다 궁금한 게 더 크다”고 주저 없이 답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당차지만, “다 망한 것 같다”며 눈물을 머금기도 하는 나약함도 있다. 토일이의 다층적인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최 감독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땐 토일이가 당당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자기 멋대로 할 것 같고요. 감독님과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혼가정에 대한 콤플렉스, ‘난 누굴 닮아서 이런 사람이 됐나’에 대한 고민 등 토일이의 속내를 더 깊이 알아갔어요. 감독님과 좋아하는 영화, 카페 등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했어요.”

이해가 되지 않는 토일이의 행동에 대해서는 “대체 얘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거에요? 저 좀 이해시켜 주세요”라며 현장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5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숨기고, 무턱대고 친 아빠를 찾겠다며 대구로 떠나는 토일이의 행동이 저에겐 새로우면서 부럽기도 했어요. 제가 의외로 보수적이거든요. 전 가족 의견을 잘 따르는 편이에요. 토일이의 선택을 보면서 ‘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어요. 제가 토일이라면 대구에 가기 전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거예요. 전 세심하게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라서요. 쉽게 말해 쫄보에요. (웃음)”

소녀시대 멤버였던 친언니 제시카는 고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버팀목이다. 자매는 ‘제시카&크리스탈’이라는 예능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일을 해봤으니 말 실수를 할까 긴장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존재죠. 서로 마음을 만져주는 느낌이에요. 가끔 서로의 방에 가서 옆에 가만히 누워있다 오고 그래요.”


아이돌로 데뷔한 정수정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상속자들’ ‘하백의 신부’ ‘슬기로운 감빵생활’ ‘써치’까지 시트콤과 드라마, 영화를 섭렵하며 배우로서의 외연을 넓혀 왔다.

“저는 군인, 임신부 등 특색 있는 역할을 많이 해서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도 해 보고 싶어요. 배우로서의 목표요? 제가 출연했다고 하면 ‘그래, 보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거요. ‘거르지 않게 되는 배우’.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정수정#애비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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