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웃음을 잃은 시대. 웃음거래소 ‘웃지모텔’에선 방문객이 한 번 웃을 때마다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 금액은 1000만 원. 웃지 못하는 당신, 돈으로라도 웃음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유튜브 채널 ‘유병재’는 최근 웃지 못하는 모텔 ‘웃지모텔’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경기 파주에 있는 실제 모텔 건물 한 채를 빌린 뒤 유병재가 이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방마다 머무는 개그맨, 출연진의 코미디를 관람하는 콘텐츠다. 요즘 웃음을 잃었다는 유병재는 촬영 전 “나는 절대 못 웃긴다. 여러 번 웃길 수 있으면 몇 천만 원, 몇 억이라도 낼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가 건물을 다 돌았을 때쯤엔 사비 수천만 원이 탈탈 털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코미디 ‘전유성을 웃겨라’를 묘하게 섞은 이 콘텐츠는 기존 유튜브에서는 볼 수 없던 서사와 실험성을 갖췄다. 마지막 7회까지 큰 인기를 끌었으며, 시즌2를 요구하는 구독자들의 목소리도 많다.
이 웃음의 판을 깔고 기획한 건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유병재(33)와 ‘밈의 달인’ 김성하 샌드박스네트워크 PD(32). 14일 서울 용산구 샌드박스 사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코미디 전문가들이 잘 짜놓은 ‘웃음 실험관’ 안에 유병재라는 염산 한 방울을 떨어뜨려 화학 반응을 지켜보는 마음이었다”며 “전 국민이 열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족할 만한 뜨거운 반응을 얻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콘텐츠의 발단은 1월 유병재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누가 나 좀 웃겨줬으면 좋겠다” “웃기면 1000만 원도 주겠다”는 발언이었다. 이 ‘실언’을 들은 그의 매니저 유규선과 김 PD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내기를 걸어 작당을 시작했다. 판을 키워 유병재는 사비 총 1억 원을 준비해 모텔로 입장했다. 유병재는 “감정이 뜨겁거나 잘 웃는 성격이 아니다. 워낙 잘 웃지 않는 데에 자부심 아닌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김 PD는 “유병재 씨가 워낙 웃지 않는 걸 알고 있어 도전의식도 생겼다. 여러 개그 달인들을 섭외하는 게 관건이었다”고 했다.
콘텐츠에는 다수의 개그맨, 방송인, 배우를 비롯해 유병재의 친누나까지 출연한다. 웃기는 방법이야 어떻든 유병재가 이빨을 드러내고 웃기만을 기다렸다가 1000만 원을 받아가는 게 이들의 목적. 개그맨 김준호, 윤성호, 안일권부터 최근 인기를 끄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멤버도 나왔다. 이들의 개그와 안면근육을 부여잡고 웃음을 참는 유병재를 지켜보는 게 시청자들의 웃음 포인트다.
유병재는 “봉준호 감독님이 말씀하신 ‘삑사리의 미학’이라는 게 웃음에서도 있는 것 같다. 개그맨 윤성호, 최우선 씨가 출연한 에피소드처럼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실수들을 보고 웃음이 육성으로 터져버렸다”고 했다. 이어 “1억 원짜리 객기를 부려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코미디를 즐기는 참가자 입장에서 고마운 콘텐츠였다”고 했다.
김 PD는 앞서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사사로운 스튜디오’ 등에서 ‘밈(meme·유행하는 특정 문화 요소나 콘텐츠)’을 잘 활용하는 편집자로 인기가 높았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만 따라다니는 마니아 시청자도 생겼다. 그는 “유튜브에서는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콘텐츠의 웃긴 포인트, 배경지식, 감상법을 댓글로 설명한다. 댓글 덕분에 밈의 활용이 자유롭다. 앞으로도 여러 소재, 코드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웃지모텔’을 접한 시청자들의 반응 중에는 웃음과는 별개로 “고맙다” “따뜻하다”는 반응도 많다. 방송사의 공개 코미디 무대가 점차 사라지며 설 자리가 좁아진 개그맨들이 다시 조명받을 수 있도록 유병재가 돕는다는 맥락에서다. 유병재는 “제가 감히 누군가를 돕는다는 표현은 건방지다. 코미디를 하는 사람으로서 제 채널이 다같이 재밌게 놀 수 있는 장이자 플랫폼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2019년 ‘카피추’라는 캐릭터로 사랑받은 개그맨 추대엽도 그의 채널을 통해 처음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유병재의 매니저로 대중에 얼굴을 알린 샌드박스네트워크 유병재 스튜디오팀의 유규선 매니저도 참석했다. 그는 이번 콘텐츠의 출연자인 동시에 기획도 맡은 주역이다. 그는 “개그맨 김준호 씨처럼 콘텐츠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분들이 출연료도 먼저 낮춰주신 덕분에 다른 TV 프로그램에 비하면 적은 제작비로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시즌2 제작을 바라는 구독자들 요청에 이들도 “시즌2 준비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조만간 머리를 맞댈 계획이다. 이번 시즌에 출연자들을 직접 섭외했다면, 앞으로는 출연자를 공개모집하는 방식도 고민 중이다. 김 PD는 “사실 많은 개그맨, 방송인들에게 접촉했을 때 웃기지 못 했을 때의 리스크에 큰 부담을 느끼셨다. 웃기는 능력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웃음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웃음이 좋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터.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들은 매일 웃음에 골몰하는가. 유병재는 “굳이 누군가를 웃길 필요가 없는,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도 누군가를 웃기려고 노력하는 걸 자주 봤다. 웃음은 우리 상상 이상의 큰 존재”라고 말했다. 이에 김 PD는 “행복과 가장 친한 단어가 웃음이다. 그만큼 행복하시다는 거지”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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