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파선 안 되는 시대… 공부머리, 만들 수 있다
‘달달’ 암기보다 통독이 효과적… 실패 딛고 일어나는 빠른 회복력
마음을 잘 다잡는 것이 강점…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기
꿈은 크게 꾸고, 오늘은 단순하게 살기
어버이날이 막 지난 5월 9일 오후, 하루를 25시간처럼 쓰는 아리따운 여성을 만났다. 올 4월 교육서를 펴낸 변호사 겸 방송인 서동주(38) 씨다. 서씨는 개그맨 서세원과 모델 서정희의 딸이기도 하다. 우월한 미모를 타고난 데다 어릴 때부터 학업과 예술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 ‘엄친딸(모든 면에서 부러움을 사는 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이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열세 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걸어온 길도 화려하다. 10대 시절 빌 클린턴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모범생으로 인정받았으며 미국 최고의 여자대학인 웨슬리대학교에 미술 전공으로 입학했다. 웨슬리대 2학년 때는 자매 학교인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수업에서 1등을 하면서 편입에 성공한다. 이후 교수 추천으로 입학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는 마케팅 석사학위를 받는다. 몇 년 뒤인 2015년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로스쿨에 들어가 3년간 법학을 전공하고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약력에 나열되는 글자의 이면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서씨는 이번에 낸 신간 ‘서동주의 합격 공부법’에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에 문·이과, 예체능 시험까지 모두 패스한 변호사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는 숱한 실패 경험과 이를 합격으로 승화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그는 특유의 근성을 밑거름 삼아 여러 직함을 가지고 일한다. 법무법인 정향의 파트너 미국 변호사에 유튜버이자 방송인 겸 작가이며 최근엔 블록체인 개발회사 네스텐의 마케팅최고책임자(CMO)라는 직함까지 달았다.
한 우물만 파선 안 되는 시대
- 여러 직업을 유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정신없이 바빠야 삶에 활력이 도는 것 같다. 정시 출퇴근이 의무가 아니어서 업무적으로 크게 부담스러운 직업은 없다.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예전에는 평균수명이 짧아 한 우물을 파는 게 당연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100세 시대고 앞으로는 더 오래 살 것이다. 긴 인생을 준비하려면 다양한 능력과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호기심까지 많아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 ‘뇌섹녀(뇌가 섹시한 여자)’ ‘엄친딸’로 불린다. 지능지수(IQ)가 높은가.
“지능지수가 높으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도가 높아서 시험을 잘 본다든지 교육효과가 빨리 나타난다. 반면에 나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편이다. 나처럼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의 두뇌를 갖고 있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는 머리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공부를 잘하려면 잔머리도 좋아야 하고, 넘겨짚기도 잘해야 하고, 스토리와 스토리를 연결하는 능력도 좋아야 한다. 이건 타고나기보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 노력하면 없던 공부머리가 생길 수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 있던 공부머리가 없어질 수 있다.”
- ‘서동주의 합격 공부법’이라는 책을 낸 동기는 뭔가. “다 필요 없고 공부법만 알려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친동생조차 누나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성적이 좋은 게 신기하다며 그 노하우를 궁금해하더라. 사실 내 집중력은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산만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중요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학생뿐 아니라 시간이 부족해 시험 준비를 미루는 직장인에게도 귄하고 싶다.“
자신의 직업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더할 만큼 그는 여러 권의 책을 냈다. 2008년 ‘동주이야기’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이방인’(2020), ‘내일을 위한 다짐’(2021)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교육서는 ‘서동주의 합격 공부법’이 유일하다.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그만의 공부 노하우를 듣기 앞서 그가 왜 유학시절 여러 번 전공을 바꾸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며 견뎠는지 궁금했다. 시간을 거슬러 그의 학창 시절로 가보자.
공부머리, 만들 수 있다
- 예원중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유학을 갔다. 특별한 동기가 있나.
“중1 때 미국으로 가족여행을 간 것이 계기가 됐다. 푸르른 들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봤다.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와 집밖에 몰랐다. 당시 과외를 11가지나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하면 저렇게 푸른 들판에서 뛰어놀 수 있겠다 싶어 부모님을 설득해 미국 유학을 갔다.”
- 미국에서 사립 명문인 페이스쿨과 세인트폴 고등학교를 다녔다. 사교육을 별도로 받았나.
“기숙사에서 지내며 사교육 없이 예습, 복습에 충실했다. 사교육은 한국에서 질릴 정도로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때 과외를 11가지나 했다. 수학과 영어는 기본이고 한문에 미술, 스피치 과외까지 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3명이었다.”
- 한창 놀고 싶을 나이 아닌가.
“‘아싸(아웃사이더)’라서 그다지 놀고 싶진 않았다. 지금도 아싸다. 회식하면 말없이 화장실 가는 척하며 도망가는 타입이다.”
- 미국 유학 시절 가장 큰 고충을 꼽는다면.
“유학 가기 전에도 반에서 계속 1, 2등을 했는데 미국에 가서 처음에는 언어장벽 탓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어가 가장 큰 미션이었다. 미국에서도 공부로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 목표를 세우고 공부에 집중했다. 소등 시간이 밤 10시여서 이후엔 이불 안에 스탠드를 켜놓고 공부했다. 공부를 못 하게 하니까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해 더 ‘열공’하게 되더라.”
- 성격이 내향적이면 언어를 배우기가 힘들지 않나.
“영어를 익히려고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일부러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친구를 사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미국 애들은 저녁 먹고 나서 다 같이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본다. 윌 스미스가 나오는 시트콤을 즐겨 보면서 공감대를 가지려고 애썼다. 이해가 안 돼도 아이들이 웃으면 따라 웃고 그랬다.”
- 동양인이라서 소외당한 적은 없나.
“외국인이 꽤 있는 사립학교여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차별하진 않았다. 이미 왕따당하는 백인 친구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너무 바싹 마르고 다른 한 명은 머리를 바짝 깎은 아이였다. 그애들이 몇 년간 왕따를 당했다.”
- 미국에서 공부하며 직접 아르바이트(알바)를 해서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고?
“중·고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시고 대학교 때는 가세가 기울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알바는 다 했다. 교내 식당에서 청소와 설거지 알바를 하고 통계학 성적이 잘 나와 통계학 조교를 꾸준히 했다. 학교에서 지정해주는 과외 선생님으로도 활동했다.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붙여주는 과외 선생님이다. 수학을 잘해서 또래 친구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친 후 수업한 시간만큼 학교에서 돈을 받았다.”
전공 바꾸며 재능과 적성 살려
- 미술을 전공하다 공대에 편입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했다. 미국에서는 잘하는 과목을 월반해 들을 수 있어서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학교가 제공하는 최상의 고등수학을 마스터하고 졸업했다. 웨슬리대에 입학해 순수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자매학교인 MIT에서 수학, 과학 수업을 들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수학 수업을 많이 듣느냐’고 의아해할 정도였다. 성적도 좋았다. 수학 수업에서 계속 1등을 했다. 웨슬리대에서, 그것도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공대생을 제쳐서 교수님들이 신기해하셨다.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편입을 권하시기도 했다. 나중에 추천서도 써주셨다. MIT 친구들도 편입을 권하던 터였다”.
- 대학 진로를 정하면서 수학을 고려하지 않았나.
“어릴 땐 엄마가 원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피아노를 때려치운 후엔 미술에 집중했다. 엄마는 예원중, 예원고, 이대(이화여대)를 나와야 시집을 잘 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웨슬리대에 간 것도 미국의 이대 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부인 김영명 씨도 웨슬리대를 졸업했다. 정몽준 이사장이 MIT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웨슬리대에 다니던 부인을 만났다. 웨슬리대에 입학했을 때 그런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엄마가 ‘잘하고 있어. 나쁘지 않아’라며 농담처럼 말하신 기억이 난다. 이후 소개팅을 많이 했는데 주로 MIT나 하버드대 학생이었다. 웨슬리대 학생은 예쁘고 여성스럽고 착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더라.”
MIT를 졸업한 후 와튼스쿨에서 마케팅 석사과정을 밟은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짧은 결혼 생활을 경험했다. 이후에는 한동안 중국, 체코 프라하, 미국 등 해외 자선단체에서 마케터로 일하며 재능을 기부하는 변호사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가 나이 서른둘에 로스쿨에 발을 들인 데는 그들에게서 받은 건강한 자극이 한몫했다. 솔로로 돌아온 그에겐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했다. 물가가 높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하려면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며 안정된 생활도 누리기 위해 로스쿨에 들어갔어요. 마침 장학금을 준다는 학교가 있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로스쿨 들어가서 3년만 고생하고 로펌에 취직하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죠.”
그는 로스쿨 2학년 여름 유명 로펌 퍼킨스 로이에서 인턴십을 경험한다. 이후 로스쿨을 다니는 내내 이곳에서 일한다. 2018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9년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엔 상표등록 등 지식재산권 관련 업무를 주로 맡았다. 한국 로펌에서는 미국과 관련된 영어 계약서를 검토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마음을 잘 다잡는 것이 강점
- 책에서 ‘화려한 이력 뒤에 많은 실패 경험이 있다’고 밝힌 대목이 시선을 붙잡았다.
“이력서에는 최종 결과만 나열해 놓으니 쉽게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실패를 딛지 않고는 얻기 힘든 것들이다. 로스쿨 1학년 때는 무려 60번의 면접 끝에 인턴 자리를 얻었다. MIT 편입도 한 번에 성사되진 않았다. 가을학기에 떨어져서 이듬해 봄에 편입했다. 편입은 시험이 없고 성적만 보는데 웨슬리대를 다닐 때 들은 MIT 수업에서 1등을 많이 한 게 도움이 됐다. 혹자는 대학교 때는 등수가 안 나오는데 1등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100점 맞으면 1등 아닌가. 보너스 문제까지 맞히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당시 교수님이 1등과 꼴등, 평균 성적을 알려주셔서 내가 1등이라는 걸 알았다.”
- 나이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은 없나.
“그런 생각에 스스로를 가두면 결국 나만 더 힘들어진다. 굳이 부당한 대우를 하는 곳에 기를 쓰고 들어갈 게 뭐 있나. 그런 대우를 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면 된다. 나는 나이도 상대적으로 많고 이혼 경력도 있지만 그게 내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이 많고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한 사람은 어린 친구들보다 헝그리 정신이 강하다. 나 같은 경우는 시험에 붙긴 어렵지만 붙고 나면 일자리를 준 것에 감사하며 일한다.”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에 공감하나.
“실패가 내 삶에 밑거름이 된 건 맞다. 실패를 빨리 인정하고 털어버린다. 배울 건 배우면서 앞만 보고 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패했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이 좋은 편이다.”
- 긍정 마인드는 타고난 건가.
“부정적 생각을 하면 결과가 좋지 않으니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자극을 받아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한다.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삶을 살라’고 하면 날마다 감사할 순 없어도 그날은 감사하면서 살아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매일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면 점점 더 긍정적 생각을 갖게 된다.”
- 인생의 버팀목 같은 존재를 떠올린다면.
“나를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분들이 있다. 일본계 미국인인 레이 무라카미라는 이름의 로스쿨 선배가 그런 사람이다. 레이 선배의 아내가 한국계 미국인이라 내가 언니처럼 따른다. 그분들도 날 가족처럼 대한다. 특별한 명절에 나를 꼭 부른다. 로스쿨 1학년 때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됐는데 이후 도움을 청할 때마다 저버리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성공하고 싶은데 성적이 안 나와 원하는 로펌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자 내게 선배네 회사로 오라고 해서 그곳 변호사 대여섯 명을 불러 얘기를 들어볼 기회를 줬다. 레이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늘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네가 만난 변호사들도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 삶이 당장 내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조급해하지 마라’고. 큰 위로가 됐다.”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기
서씨는 공부를 두고 “근성으로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성패를 떠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부가 인생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지만 전부가 돼선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합격하지 않았다고 해도 주저앉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실패했을 땐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왜 그랬나 싶더라.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작다고 생각하면 작은 문제가 되고 크게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된다. 확대 해석은 금물. 시험을 못 봤다고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다.”
- 어떻게 극복했나.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이런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다. 공부에 더 집중하자. 걱정해 봤자 바뀌는 건 없어’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을 잘 다잡는 게 내 강점이다. 보따리에 짐을 싸듯이 걱정과 불안을 보따리에 싸서 머리 뒤에 빼놓고 이제 공부에만 집중하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셜록 홈스처럼 생각하기’라는 책을 통해 배웠다. 머리를 다락방처럼 여기며 자주 쓰는 중요한 정보는 두뇌 앞쪽에, 자주 쓰지 않는 정보는 뒤쪽에 두는 훈련을 하면 걱정과 잡념을 떨치기 쉬워진다.”
- 1등의 멘탈을 가지려면 어떤 트레이닝이 필요한가.
“내 집중력은 평균 10분 정도 지속된다. 그 한계치를 넘으면 산만해진다. 그럴 때 ‘공부가 정말 안되는 날’이라며 포기하지 말고 게임을 한판 하든지,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는 10분 집중해서 공부하고, 10분 딴짓하는 사이클을 무한 반복함으로써 그날 정한 공부량을 채웠다. 멘탈을 건강하게 관리하려면 공부가 안되는 날도 어느 정도 목표치를 해내 스스로에게 성취감을 안기는 게 좋다.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해 스스로 더 나아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 합격을 당기는 공부 스킬이 뭔가.
“핵심노트, 오답노트, 통독 암기법을 ‘강추’한다. 핵심노트는 목차를 뼈대로 삼아서 공책 정리를 하는 걸 말한다. 처음엔 가볍게 통독하고 통독하면서 뼈대에 살을 붙이듯 중요한 핵심을 더해나가는 것이다. 오답노트는 오답을 기록하는 노트다. 기출문제를 풀고 나서 틀린 문제는 물론 맞힌 문제의 해답과 풀이 과정을 모두 꼼꼼히 살폈다. 우연히 맞을 수도 있고, 잘못된 논리로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답을 보고 잘못 이해한 것도 오답노트로 직행한다. 오답노트에는 갈수록 남는 게 없어져야 하고 핵심노트는 점점 더 알차게 채워져야 한다. 통독 암기법은 막무가내로 외우는 것이 아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통독을 반복함으로써 내용을 숙지하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대충 한번 훓어보고, 통독 횟수가 쌓일수록 더 꼼꼼하게 신경 쓰면서 읽는 것이 포인트다. 책에는 ‘7번 통독하라’고 썼지만 시간이 부족하면 4~5번 읽어도 굉장히 큰 효과가 있다.”
꿈은 크게 꾸고, 오늘은 단순하게 살기
- 수학을 잘하는 노하우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적 호기심을 발동해 공부를 시작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울러 반복학습에 힘써야 한다. 문제집을 사서 문제풀이가 완벽해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 풀어야 한다. 모르거나 틀리는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계속 푸는 것이 핵심이다.”
합격 가능성을 높이려면 시험 전 몸 관리도 중요하다. 적어도 감기나 배탈로 그동안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서씨는 ‘내’가 아니라 ‘뇌’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다.
“견과류가 대표적이다. 시험을 일정 기간 앞두고 시리얼, 샐러드, 달걀도 즐겨 먹었다. 시험 시간에 맞춰 문제를 풀어보는 훈련도 당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일 발생할 변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 이번에 낸 책 ‘서동주의 합격 공부법’에서 “시험을 마친 후 결과와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한 자신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보상이 필요한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시험에서 떨어진 경우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남한테는 선심 쓰듯 퍼주는 칭찬과 격려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이럴 때는 ‘이번에는 떨어졌어도 괜찮아. 다음엔 잘될 거야. 그동안 해놓은 게 있으니 조금만 더 하면 성과가 있을 거야’라는 말로 자신을 보듬어줘야 한다. 그런 따뜻한 위로가 스스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자신에게 한, 가장 기억에 남는 보상은 뭔가.
“로스쿨 1학년 때 인턴십에 계속 떨어졌을 때 받은 보상이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다. 오늘 내일 모레 결과는 당장 좋지 않더라도 그런 하루하루가 계속되면 그 끝은 빛나리라 믿는다. 그런 생각으로 넌 오늘도 후회 없이 알차게 잘살았다’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날 넷플릭스도 몰아서 본 기억이 난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교나 학원의 정상 운영이 어려워 학생들이 걱정이 많다. 그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한국에 있는 젊은이들은 치열하게 산다. 상대적 박탈감이 클 것이다. 당장은 내가 너무 뒤처져 있단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인생 속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오늘 1등이 내일 꼴등이 될 수도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순하게 살기를 권한다. 오늘 할 일을 세세하게 적어서 성취해 보길 바란다. 대신 꿈은 원대하게 꿔라. 꿈을 크게 가져야 그 절반, 아니 반의 반이라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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