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논란에 속타는 ‘설강화’…특별편성 뒤 여론은 과연

JTBC ‘설강화: snowdrop’ 포스터© 뉴스1

지난 3월 드라마계에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방송 2회 만에 폐지가 된 것. 이후 9개월이 지난 12월,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바로 지난 18일 처음 방송된 JTBC 주말드라마 ‘설강화: snowdrop’(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이하 ‘설강화’)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 분)와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영로(지수 분)의 시대를 거스른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정해인, 지수, 유인나 등이 출연했으며, 사전 제작돼 이미 모든 촬영을 마친 상태다.

물론 ‘설강화’의 역사 왜곡 논란은 방송 이후부터 불거진 게 아니다. ‘설강화’는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던 지난 3월, 시놉시스의 일부가 유출되면서 극의 내용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을 받은 바 있다.

주장의 주요 내용은 남자주인공이 운동권인 척하는 남파공작원으로 설정된 것, 다른 남주인공이 안기부 팀장이지만 정의롭고 대쪽같은 인물로 묘사된 것 등이었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내용이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JTBC는 당시 입장문을 내고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어 “(극 중 남파공작원, 안기부 팀장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적극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부각하는 캐릭터들이므로 간첩활동이나 안기부가 미화된다는 지적도 ‘설강화’와 무관하다”라고 설명했다.

JTBC ‘설강화: snowdrop’ 스틸컷 © 뉴스1

그렇게 역사 왜곡 논란이 수그러드는가 했지만 지난 18일과 19일 방송 이후 ‘설강화’의 남자주인공 수호가 남파간첩인 점을 들며, 논란은 다시 불 붙었다. 누리꾼들은 방송 시청 후 지난 3월 JTBC가 내놓은 해명과 달리 여전히 ‘설강화’가 역사를 왜곡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을 하고 나선 상황이다.

특히 지난 19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설강화 방영 중지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까지 등장했다. 해당 청원은 24일 오후 기준 약 34만명의 동의를 얻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400건이 넘는 심의 요청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설강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엿볼 수 있는 수치였다. 이에 ‘설강화’에 협찬과 광고를 지원한 기업들 역시 이를 철회하고 나서 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설강화’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보면 좌우에서 모두 비판받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며 “정말 핵심은 남자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관여했든 아니든 남파공작원으로 설정돼 있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과연 이게 방송에서 가능한 설정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이어 “‘설강화’ 측은 당시 시대적 상황이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당시 시대를 너무 디테일하게 묘사를 해놨다”라며 “그러면서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작진은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트라우마를 왜곡하고 증폭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라며 “‘설강화’는 당시를 살았던 이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생각하지 않고, 수용자들의 입장을 배제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얘기했다.

부정적 여론이 강해지자 JTBC는 ‘설강화’를 지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극의 이야기가 반전된다는 5회까지를 한 주 앞당겨 방송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 JTBC 측은 지난 23일, ‘설강화’의 3회, 4회, 5회를 각각 24일과 25일, 26일에 편성한다고 알리며 “방송 드라마의 특성상 한 번에 모든 서사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초반 전개에서 오해가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시청자분들의 우려를 덜어드리고자 방송을 예정보다 앞당겨 특별 편성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JTBC ‘설강화: snowdrop’ © 뉴스1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이에 대해 “‘앞에 나왔던 이야기는 사실 그런 게 아니다’라는 것인데 정말 그게 아니라면 앞서 보여줬던 설정이 굳이 정말 필요했을까를 물어볼 수밖에 없다”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을 전진 배치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효과가 무엇인지도 의문이 든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장면을 그릴 때는 여러 가지 의도가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오해할 수 있게 만든 부분 자체가 문제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평론가들은 ‘설강화’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은 지적하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과 조기종영 요구와 관련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무리하게 드라마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넷플릭스처럼 전편 공개가 아닌 주마다 회차가 방송되는 연속극이다 보니깐 초반부인 지금은 논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도 봐야한다”라고 이야기 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역시 “‘조선구마사’ 때와 같이 드라마 자체가 중단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라며 “드라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지 않거나 오히려 시청률이 안 나오게 해서 항의의 뜻을 보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구마사’와 같이 여론의 뜻에 의해 몰이가 되고 드라마 자체가 방송 중단이 된다면 또 다시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과연 방영 초반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설강화’가 이번 주 특별 편성 뒤에는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 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