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에스더 “800평대 대궐 같은 집 살다 온가족 국외 추방”…70년대 정치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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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3월 26일 09시 11분


‘신과 한판’ 캡처 © 뉴스1
‘신과 한판’ 캡처 © 뉴스1
의사 여에스더가 과거 아버지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국외로 추방돼 생활했던 과거를 밝혔다.

여에스더는 남편 홍혜걸과 함께 25일 오후 방송된 MBN ‘신과 한판’에 출연, 어린 시절 대구에서 대궐 같은 집에서 부유하게 살았던 과거를 밝히며 “우리 할아버님은 정계쪽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워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대구에 오시면 항상 우리 집 마당에 오셨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민당 후보로 대구에 유세를 오셨다, 그때 TK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전물을 어떤 언론사도 찍어주지 않았다”며 “우리 아버지가 대구일보의 기획실장이었다, 할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해 절대 못하는데 아버지는 반골 기질이 있어서 전부 인쇄물을 안 찍어준다고 하니까 밤새 친구들과 윤전기를 돌린거다, 수성천에 유세 나오면서 대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전물이 쫙 깔리니까 안기부의 전신 중앙정보부에서 바로 아버지를 잡아갔다”고 밝혔다.

이후 여에스더의 할아버지는 청와대를 찾았지만 너무 화가 난 박 전 대통령이 방문을 받지 않아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여에스더는 “할아버지가 가진 모든 사업체가 하나 빼고 자산공사로 넘어가고, 할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너희는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는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실 때 국내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부모님과 여에스더를 포함한 자매들은 70년대 일본에서 3년간 생활을 해야했다. 여에스더는 “여덟 살이다, 1972년 봄이니까 초등학교 1학년 끝날 무렵이었다, 72년도 초에 저희 신문사가 폐간될 무렵, 신문사가 폐간을 하니까 기자들이 저희 집 마당에 수십명이 와서 퇴직금을 달라고 데모를 하는데 그 노래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퇴직금 달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돈, 돈, 돈 내놔’ 하는 노래였다”고 회상했다.

일본 생활은 부유했던 한국 생활과 달리 단촐했지만 자매들에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여에스더는 “800평 대궐에 살다가, 엄청나게 조그만한 맨션으로 갔다, 방이 두개가 있고 거실이 있다, 거실 하나에 이불을 펴놓으니까 가득차더라”며 “딸들은 방 하나에 2층 침대를 두고 (한 칸에 두 명씩) 네 명이 살았다, 하지만 저나 언니들은 워낙 한국에서 복잡한 환경에서 살다가 일본에서는 온전히 저희 식구만 살았다, 그 3년이 저희한테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안에 시끄러운 일도 없고”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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