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부터 특이하다. 문단속으로 재난을 막을 수 있다니.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 등의 작품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 답다. 신카이 감독은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앞서 두 작품에서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특별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오는 8일 개봉을 앞둔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독창성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재난으로 인해 일상을 위협받는 불안한 일본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세계관 속에 가족간의 따뜻한 드라마와 숭고한 구원의 서사, 개인의 성장 서사까지 다채로운 요소들을 완미하게 담아냈다.
어린 시절 재난으로 간호사였던 어머니를 잃고 이모와 함께 살아온 고등학생 스즈메는 등굣길 “폐허”와 “문”을 찾는 잘생긴 남자와 마주친다. 첫눈에 그에게 반한 스즈메는 가던 길을 돌이켜 그를 쫓기 시작한다. 남자가 말했던 폐허에는 과거 온천마을이 있었지만 재해로 인해 이제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폐허의 어느 건물 안을 돌아다니던 스즈메는 물이 가득한 목욕탕 중앙에 자리잡은 문 하나를 발견한다. 다가가 문을 여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몸은 그냥 통과돼 문의 반대편으로 나오고 만다. 문 주변에서 스즈메는 고양이 모양의 비석을 하나 발견하고 땅에 박혀있던 그것을 뽑아버린다. 어디에도 잘생긴 남자는 보이지 않고, 스즈메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교실에 앉은 스즈메에게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까 자신이 갔던 폐허 쪽에서 검붉은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나오고 있는 것. 하지만 친구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생긴 것이라 직감한 스즈메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폐허로 달려간다. 그곳에서는 아까 봤던 그 잘생긴 남자가 문 밖으로 튀어나온 검붉은 괴물 미미즈와 싸우고 있다. 남자에 따르면 미미즈를 막기 위해서는 열린 문을 닫고, 잠가야 한다. 미미즈를 막지 못한다면 이 마을에 곧 지진을 비롯한 재해가 발생할 것이다. 스즈메는 남자를 도와 문을 잠그는 데 성공하고 문을 닫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남자를 치료해주기 위해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남자의 이름은 소타였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토지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소타는 전국의 폐허를 돌아다니며 열린 문들을 닫는다.
소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스즈메의 집을 찾아온 귀엽게 생긴 고양이 ‘다이진’이 갑자기 소타를 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소타는 어린 시절부터 스즈메의 방에 보관돼온 유아용 의자가 돼버렸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만들어준 추억의 물건이다. ‘다이진’은 사실 미미즈가 나오는 문을 지키는 요석이었는데, 스즈메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됐다.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를 데리고 도망친 요석, 다이진을 쫓기 시작한다. 요석이 뽑혀버린 탓인지 미미즈가 전국 여러 곳에서 문밖으로 튀어나오게 되고 곳곳에서 재해의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관통하는 것은 따뜻한 감수성과 동화적인 상상력이다. 의자가 돼버린 소타를 돕는 스즈메, 그리고 그런 스즈메가 다이진을 쫓는 여정 속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돕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의 선의를 베푼다. 그리고 그 작은 선의들이 모여 재난을 막는다. 재난을 닫는 문에는 열쇠 구멍이 없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폐허가 되기 전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진정한 공감에 다다를 때 열쇠를 넣을 구멍이 생기고 문을 잠가버릴 수 있다. 통제불가의 재난에 맞닥뜨렸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포기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내는 것 뿐이다.
애니메이션 답게 귀여운 상상력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스즈메의 고양이가 되고싶다”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고양이 다이진과 의자로 변해버린 ‘꽃미남’ 소타는 다분히 만화적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깨알’ 코미디는 다소 멜랑콜리할 수 있었던 극의 분위기를 밝고 희망차게 유지시켜 준다. 극의 말미,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는 스즈메의 시퀀스는 판타지 어드벤처였던 영화에 촉촉한 여운을 더해준다. 러닝타임 122분. 오는 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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