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자’를 처음 보고 나서 영화가 끝났을 때 무서웠어요. 저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만 보이니까 ‘선호야 너 어떡하냐’ 싶으면서 저기서 왜 저렇게 했지? 저기서는 왜 저렇게 했지? 했는데 팬분들이 응원을 해주니 진정이 됐어요. 팬들은 심적으로나 연기적으로나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분들이에요.”
배우 김선호(37)가 기다려 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영화 ‘귀공자’로 스크린에 데뷔한 김선호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 관련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스크린 데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솔직히 말해서 영화를 못 보겠더라, 단점만 보였다, 내 얼굴과 내 연기가 너무 크게 보인다”고 답했다.
“여러 번 제 연기에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김)강우 선배가 어깨를 두드려줬어요, 원래 다 그런거라고요.보다 보니 익숙해져서 ‘보던 얼굴이네’ 하고 넘어갔는데 사실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고 제 단점만 저도 한 일년 만에 보는 거니까, 시사회 때 신기하고 어색하고 그럤어요.”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렸다. ‘신세계’ ‘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며 김선호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김선호는 극중 마르코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귀공자를 연기했다.
정체불명 귀공자 캐릭터는 김선호가 드라마 등에서 기존에 맡아온 로맨틱한 배역들과는 색깔이 다르다. 얼핏 빌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의외의 반전이 있는 인물이며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는 액션 캐릭터다. 강렬한 역할에 대한 갈망이 있어 이 작품을 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영화 ‘신세계’ ‘마녀’ 등 자신이 재밌게 본 작품의 연출자 박훈정 감독에 대한 신뢰가 컸다.
“대본을 보기 전에 감독님 팬이라고 하고 만나고 대본을 안 읽은 상태에서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앉아서 어떤 역할인지 말씀은 들었지만요. 대본보다 감독님과 함께 하는 게 의미가 있어서 했어요. 감독님 보고 싶었어요, 팬이에요, 하고 같이 하게 됐죠.”
‘귀공자’는 2021년에 ‘슬픈 열대’라는 제목으로 준비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김선호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졌다. 전 여자친구와 주고받았던 문제는 결국 잘 정리됐지만, 논란의 여파는 김선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1박2일’과 크랭크인(촬영개시)을 준비 중이던 ‘도그데이즈’ ‘2시의 데이트’ 등의 영화에서 하차했다. ‘슬픈 열대’에서도 하차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으나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의 캐스팅을 고수했다.
“그때 당시에 박훈정 감독님의 심정은 내가 알 길이 없어요. 그저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었어요. 감독님과 제작사 스튜디오앤뉴 장경익 대표님도 같이 계셨는데 두 분이 회의하고 얘기하셨었어요. ‘너만 괜찮으면 우리는 끝까지 할 생각이 있어’라고요. 대표님과 감독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당시 마음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감독님은 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셨어요.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지’ 하면서요. 제 입장에서는 이미 영화가 미뤄졌고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었죠. 감사한 마음에 ‘네 저도 하겠다’ 했어요. 제가 안 하면 더 미뤄지거나 손해가 있는 상황이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박훈정 감독과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박 감독은 자신의 차기작 ‘폭군’에도 그를 주연으로 캐스팅 했다.
“우스갯소리로 감독님이 (김)강우 선배님은 워낙 연기를 잘해서 그 다음 작품에 캐스팅 했다고 하시고 저는 친해서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웃음) 저에게 지금은 엄청나게 좋은 연출자이시자 좋은 형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친구 같아요. 연기 외적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사람 대 사람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발전적으로 상황이 변해갈지에 대해 얘기해주시는 분이에요.”
김선호는 데뷔 전인 군 시절 육군훈련소 조교로 복무한 이력이 있다. 그 덕에 총격 액션 등 다양한 액션신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군인 때는 장총을 썼어요. 그래서 아쉬웠던 건 장총이 있었으면 멋있었을텐데 권총이라서 조교 때 실력 발휘는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그런 건 있었어요. 반동에 대한 감각 공포탄이 어느 정도크기의 소리가 나는지 하는 것들은 알고 있었고 가늠쇠, 가늠자를 조준하는 것도 빠르게 익숙해져 촬영에 임할 수 있었죠.”
계속 달려야 하는 추격신도 많아 힘들었지만, 더 고생하는(?) 강태주가 있었기에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그는 너무 힘들어 주저 앉으면 강태주가 와서 자신의 손에 아르기닌을 쥐어주었다는 훈훈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박 감독에게 의외의 장면에서 연구를 해오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욕을 하는 장면이었다.
“감독님 기준에서 제가 욕 하는 게 조금 어색하다고 하셨어요. ‘너 평소 말투가 호의적이야, 조금 더 하고 참고 영화와 영상도 많이 좀 보고 연습을 하라’고 하셨어요. 사실 평소 친구들이랑은 욕도 하고 웃기려고도 하는데 그런 것도 차진 욕이라기 보다는 장난으로 하는 어설픈 욕이죠. 제 인생의 모토는 거슬리게 하지 말자,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하는 게 있어 그게(욕이) 잘 안 됐어요.”
욕 장면이 어려워 그는 박훈정 감독에게 “어떤 영상을 봐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박훈정 감독은 “내 작품만 해도 ‘신세계’에서 선배들의 레퍼런스가 얼마나 많은데 네가 지금 봤던 것 중에 보면 되지”라고 대답했다고.
개봉을 앞두고 영화는 ‘슬픈 열대’에서 ‘귀공자’로 제목을 바꿨다. 사실상 김선호는 타이틀롤을 맡은 주인공이 됐다. 박훈정 감독은 “‘축하해, 첫 영화가 그렇게 돼서’”라고 말해줬고, 김선호는 “‘괜찮을까요? 너무 고맙고 감사한데 사실 너무 무섭다’고 말했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귀공자’가 돼서 더 떨렸어요. ‘귀공자’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묻기도 했어요. ‘귀공자’의 귀공자 역할이면 오해할 법 하니까요. 완전히 원톱 주인공으로 시작되는 거야? 하실 수도 있어요. 사실 그게 아니에요. 다른 의미의 귀공자도 있어요. (극중)김강우 선배님은 태생적인 귀공자, 강태주는 숨겨진 귀공자에요.”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2021)를 통해 김선호는 청춘 스타로 부상했고, 국내외에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사생활 논란으로 인해 절정의 커리어는 잠시 중단됐고, 어려운 시간을 겪기도 했다. 어찌됐든 논란으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아쉽거나 원망스러운 마음은 없을까.
“송구스러운 마음이 제일 컸고 나로 인해서 내 주변분들, (박훈정) 감독님께 미뤄진 게 죄송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나를 어쨌든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 시간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제 실력이나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이 갑자기 넓어지고 좁아지지 않았으니까요. 이 작품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변함은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을 원망하거나)그렇지 않았어요.”
배우로서 가진 목표는 여전히 기대해준 이들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것 밖에 없다. 매 작품 듣는 조언과 평을 전환점으로 삼아 계속 성장을 이어갈 예정이다.그는 “배우로서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발전적으로 할 거다,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귀공자’를 한 번 봐서 모르겠지만 개봉이 되고 누군가의 조언을 듣는다면, 매 작품마다 느끼지만 전화점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발전하는 데서도 이번 영화가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전환점은 배우의 몫이니까요. 제가 받은 평가를 가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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