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어느 겨울 서울 종로구 사직동. 고층 빌딩 사이로 오래된 한옥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곳은 ‘평만옥’. 6·25 전쟁 때 월남해 자수성가한 무옥(김윤석)이 38년째 운영하는 만둣집이다.
무옥은 푼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구두쇠다. 화장실 문에 ‘큰 거는 4칸, 작은 거는 1칸’이라고 적어둘 정도다. 타고난 절약정신과 손맛으로 서울 시내에 건물 몇 채를 살 정도로 부를 이뤘지만 이런 그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이 있다. 바로 외아들 문석(이승기).
문석은 의대를 다니다 홀연 가출해 승려가 됐다. 고조부 제사까지 지낼 만큼 전통을 중시하는 무옥은 자기 아들 때문에 함씨 가문의 대가 끊길까 걱정이다. 조상님 뵐 낯이 없다며 실의에 빠진 어느 날 평만옥에 문석이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얘기하는 어린 남매가 찾아온다.
사연을 들어보니 문석이 대학 시절 기증한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 한날한시에 부모를 잃은 민석·민선은 정자 기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후견인인 삼촌에게 버려져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민선이 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될 상황까지 되자 민석은 동생과 헤어지기 싫어 생물학적 아버지인 문석을 찾게 된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무옥은 뛸 듯이 기뻐한다. 가문을 이어갈 핏줄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옥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호적에 손주들을 입적시키고 한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문석은 자신이 아이들의 친부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기로 한다.
‘대가족’은 무옥이 한 번도 본 적 없던 손주들을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변호인’(2013), ‘강철비’(2017) 등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가족 드라마다.
영화는 전통을 중시하는 아버지 무옥과 그런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아들 문석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조명한다. 남보다 못한 사이였던 무옥과 문석이 민석·민선 남매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관계를 재정비하는 모습으로 감동적인 대가족의 결실을 맺는다.
무옥 역을 맡은 김윤석은 든든하게 극을 이끈다. 전매특허인 연기력으로 작품의 키를 능숙하게 잡고 조율한다. 아들 문석을 비롯해 연인 방여사(김성령), 수행승 인행(박수영) 등과 붙을 때마다 각기 다른 코미디로 재미까지 더한다. 특히 구두쇠에 억척스럽게만 살았던 그가 가족에게 사랑을 조금씩 표현하는 과정은 감동스럽게 다가온다.
웃음에 집중했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감동을 주는 데 주력한다. 같은 피를 나눈 가족도 화목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들의 여정은 험난하고 혼란스럽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헤쳐 나간다. 이 과정이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지만 관객의 공감을 충분히 살 내용이다.
물론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설정이 빈약하다고 느낄 수 있다. 결말 부분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하기엔 올드하다. 이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에 애써 김을 빼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영화는 ‘대가족’이라는 제목처럼 온기가 흐른다.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며 스며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 장의 만두피에 싸여 만두가 되듯, 핏줄만 생각하던 무옥이 생면부지의 손주들을 가족으로 품어가는 과정은 만두처럼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오는 12월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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