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혼내기 전에 교육 목표를 생각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7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책장 앞에서 그림책을 꺼내 읽고 있다. 한 5분쯤 보더니 다시 다른 책을 꺼낸다. 2, 3분 보는 것 같더니 또 다른 책을 꺼낸다. 책장 앞에 펼쳐진 그림책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엄마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다 본 책은 정리하고 다른 책을 꺼내야지. 계속 읽다 말고 꺼내기만 하면 어떡하니? 얼른 정리부터 해.”

엄마의 행동은 잘한 것일까, 잘못된 것일까. 그 상황에서 가졌던 교육 목표에 따라 다르다. 즉, 뭘 가르치려고 했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만약 며칠째 어질러져 있는 놀이방 정리를 가르칠 목적이었다면 엄마의 행동은 잘한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히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책 몇 권 정도 어질러져 있는 것은 봐줘야 한다. 책을 읽히는 것이 목적이기는 한데 정리정돈이 안 된 것이 신경이 쓰여 빨리 정리하라고 한 것이라면 엄마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아이가 책을 빼 놓기만 하면 엄마가 바로바로 꽂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유아기 아이들은 집중시간이 짧다. 그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못 읽는 경우가 많다. 책을 보다가 갑자기 다른 것이 생각나서 다른 책을 뺄 수도,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다 다시 이전 책을 보기도 한다. 이때 이전 책이 눈에 띄어야 하는데 엄마가 바로바로 정리해 버리면 아이는 자신이 조금 전에 뭘 했는지 기억하고 그 활동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놀이 또한 그렇다. 놀이는 유아기 배움의 기본이다. 놀이로 관계를 배우고 학습도 한다. 놀이는 정해진 틀이 없으며 놀라운 상상으로 엄청나게 확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가 자꾸 “다른 놀이 하려면 하던 것은 치우고 해야지”라고 하면 놀이를 이어갈 수 없다. 아이는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을 보고 아까 하던 것이 생각 나 다시 이어가며 놀이를 확장해 가기도 한다. 한 가지 놀이를 한 후 정리를 하고 그 다음 것을 하려고 하면 놀이의 흐름이 끊길 수도 있다. 사실 아이가 책을 읽기를 바라면서, 즐겁게 놀기를 바라면서 자꾸 정리를 강조하는 부모는 아이의 ‘교육 목표’보다는 그저 자기 마음 편한 것이 우선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리 정돈은 아이가 실컷 놀고 나서 맨 마지막에 해도 된다. “오늘은 그만 읽을 거니?”라고 묻고,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이제 책을 꽂아 놓자. 그래야 다음에도 찾기 좋으니까. 엄마에게 하나씩 줄래?” 하면서 정리 정돈을 가르치면 된다. 혹은 “이만큼은 네가 꽂아” 하고 나머지는 엄마가 꽂아줄 수도 있다. “네가 어질렀으니까 네가 다 치워”라고 말하면서 정리 정돈을 가르치려고 하는 부모가 많다. 그런데 이것은 어린아이가 따르기에는 굉장히 버거운 지시이다. 아이가 스스로 정리 정돈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다. 유아기는 그 많은 양을 정리 정돈할 만큼 두뇌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엄마가 하는 것을 약간 돕게 하거나 아주 기본적인 범위를 정해서 그곳만 치우게 하는 것이 적당하다.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할 때는 ‘지금 나의 교육 목표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상황에서 딱 하나의 교육 목표만 정해야 한다.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면서 ‘시간 내 늦지 않게 나가는 것을 가르쳐야지’라고 목표를 정했으면 “아직 혼자서 옷도 제대로 못 입니? 밥도 혼자서 못 먹어?”라는 말, “너는 TV 보면서 밥 먹는 습관을 고쳐야 해!”라는 말 등은 필요 없다. 이런 잔소리는 한 가지 상황에 너무 많은 교육 목표를 갖는 것으로 하나라도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방해한다.

공부를 가르칠 때도 ‘오늘은 10분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연습을 시켜야지’라고 교육 목표를 세웠다면 글씨를 삐뚤빼뚤 써도, 성의 없게 그림을 그려도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숙제는 꼭 해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지’라고 했다면 아이가 아무리 투덜대면서 숙제를 해도,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가 불량해도 가만 두어야 한다.

가끔은 심사숙고해서 고른 교육 목표가 잘못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개보다는 한 개가 낫다. 어린아이일수록 그렇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가 가르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 학습 목표를 정했다고 해서 아이는 한 번에 배우지는 못한다. 적어도 3∼6개월,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교육 목표#훈육#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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