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왕의 기침 다스린 궁중비방 ‘오과茶’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6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최근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독감) 때문에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기침은 자신도 괴롭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불쾌감을 준다. 발작에 가까운 기침을 하다 보면 주변 사람의 시선도 따가워진다. 한방에선 기침을 이기는 방법으로 약물뿐만 아니라 차(茶)도 많이 이용해 왔다. 여기에는 조선의 왕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승정원일기’엔 왕들의 기침을 다스리기 위해 쓰인 다양한 처방이 기록돼 있는데 그중 가장 여러 차례 언급된 단어는 ‘오과다(五果茶)’이다. 오과다는 그 명칭처럼 호두, 은행, 대추, 밤, 생강 등 다섯 가지를 달여 식힌 후 필요할 때 꺼내 마시는 약차다. 먹기도 간편하고 장기간 복용해도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식음료에 가깝다. 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조가 가장 아끼고 신임한 어의 강명길의 저작 ‘제중신편’에 그 처방과 복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왕과 왕비에게 실제로 썼던 궁중비방을 직접 정리, 편집한 실전 비방이라 신뢰도가 아주 높은 의서다. 

 오과다는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만성 기침을 다스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처방됐다. 그는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뒤 정적들의 눈을 피해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키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한평생 애간장을 태우며 눈물로 지새우느라 그의 폐는 단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한의학은 폐의 기능을 마음의 상태와 연관짓는다. 슬픔이나 우울함은 폐를 손상시킨다고 진단한다. 한의학의 고전 ‘본경소증’엔 “울고 슬퍼하면 폐에 사기(邪氣)가 몰려가고 눈물을 흘림으로써 몸이 허약해진다”고 쓰여 있다.

 폐는 본래 가을을 상징한다. 가을이 건조하고 차가운 계절인 만큼 촉촉함과 따스한 온기를 더해 줘야 정상 상태가 유지된다. 호두는 고소하며 기름기가 많다. 윤기가 폐를 촉촉하게 만들어 음액을 보충해 준다. 수렴하려는 성질을 가진 은행은 기침으로 늘어난 폐를 정상으로 되돌린다. 밤은 신장을 이롭게 하는 과실로 상부로 향하는 기를 하부로 돌리는 기능을 한다. 생강은 냉기로 차가워진 폐의 상태를 온기로 데워 주는 기능을 하며 대추는 내부의 찐득한 진액으로 위장의 소화 작용을 도와준다.

 기침은 감기에 걸렸을 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다. 진료실을 찾는 기침 환자를 실제 원인별로 나눠 보면 감기보다 코와 가래가 목으로 넘어가는 후비루(상기도기침) 증후군이나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경우도 종종 있다. 후비루 증후군에 걸리면 목에 이물감이 생기면서 캑캑거리는 불쾌감과 함께 목 뒤로 무엇인가 넘어간다고 호소한다. 이럴 때는 오과다에 수세미를 조금 넣어 달이면 도움이 된다.

 오과다를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호두 10알, 은행 15알, 마른대추 7알, 생밤 7알, 동전 크기 생강 7쪽, 큰 배 한 개를 구한다. 생강을 제외한 재료들을 얇게 썰어 2L 정도의 물에 넣어 3시간 정도 약한 불에 함께 끓인다. 물이 줄면 보충한다. 남은 물의 양이 1.5L 정도가 되면 식힌 후 냉장 보관한다. 먹을 때 꿀을 한 티스푼 넣으면 맛도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오과차#기침#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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