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43>대파 뿌리면 감기 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궁벽한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겨울 감기에 걸리면 대파와 무를 삶아 먹고 땀을 내거나 이불 덮고 땀내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우리네 어머니는 한겨울 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파와 땅속 깊이 묻어둔 무를 파내 삶아 내고 손이 부르트도록 자식의 쾌유를 빌고 또 빌었다. 변변한 약재가 없던 시골에선 어머니의 정성과 민간요법이 감기에 대응하는 가장 큰 무기였다.

한의학에선 감기를 상한(傷寒)이라 부른다. ‘차가운 기운에 의해 생긴 신체 손상’이라는 뜻. 감기의 영어명도 추위를 뜻하는 ‘콜드(cold)’인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감기를 일으키는 큰 원인 중 하나가 추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대처법도 비슷했다. 동양은 체온을 올리기 위해 대파 뿌리(총백)를 썼지만 서양은 양파를 썼다. 미국의 건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자기 전에 양파를 구워 먹는 것을 자신만의 특별한 감기 치료법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몸이 스스로 열을 내는 것은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한 방어기제다. 체온이 1∼2도 올라가는 게 바이러스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 인체가 내는 열은 감기 바이러스에 치명적이다. 생리학자 맷 클루거의 연구에 의하면 도마뱀이나 토끼들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체온을 2도 정도 올려줄 수 있는 따뜻한 장소를 찾아 나선다고 한다.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감염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논거다.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감기에 걸렸다고 꾀병을 앓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왕이나 필부나 비슷하다. 연산군은 감기 기운을 이유로 10여 년 동안 경연(經筵)을 빼먹었고, 세종은 중국 사신이 열병(전염병)에 걸렸다는 보고를 받고서는 감기를 핑계로 접견을 미뤄버렸다.

감기의 큰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 한기다. 반정과 병자호란 등 두 번의 큰 전쟁, 큰아들 소현 세자와의 갈등 등으로 한평생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린 인조는 재위 기간 중 350회에 걸쳐 감기 증상을 호소했다. 특히 그 기록은 각종 사건, 사고가 계속됐던 재위 후반기에 집중돼 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도 집권 초기부터 자주 감기를 앓았다는 사실이다. 북벌론을 주장한 강인한 외모와 달리 체력적으로는 위장병이 있는 약골이었다. 즉위 초기의 과로와 반청주의에 따른 스트레스로 효종의 체력은 계속 고갈돼 갔다. 효종의 만성적 감기에 내려진 처방은 곽향정기산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체력을 올려주는 약재였다. 조선의 어의들은 구중궁궐의 임금님을 위한 감기 예방법으로 ‘겨울에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며 자주 나가서 운동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승정원일기에는 임금님의 감기 치료에 쓰인 처방이 소개돼 있는데 특징은 모든 약재에 ‘대파를 7쪽씩 넣어’ 약의 효험을 배가했다는 점. 왕이나 필부나 감기에 대파의 뿌리(총백)를 삶아먹는 처방을 쓴 것은 똑같았다. 대파는 본디 그 성질이 맵고 따뜻한 성질이 있어 체온을 높이는 데는 최고의 약재다. 대파가 품은 양기는 강인한 생명력에서 비롯된다. 다른 식물이 다 죽어 없어지는 한겨울에도 홀로 푸르름을 유지하고, 시들어도 흙에만 닿으면 금세 살아난다. 생기는 살아 오르는 뜨거운 양기의 다른 상징이다.

총백을 달여 마시고 땀을 내면 감기로 인한 각종 증상 개선에 좋다. 이때 말린 귤껍질과 생강을 넣으면 효험이 더 커진다. 총백의 흰 부분(3∼5개)과 귤껍질, 생강(동전 크기) 각 10g을 넣고 함께 달이면 1회 마실 용량이 나온다. 감기로 인한 두통에는 총백 한 줌을 잘게 썰어서 쌀과 함께 죽을 쒀 먹어도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대파#실록한의학#감기#승정원일기#감기 치료제#총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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