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48〉탯줄을 떼는 순간 아이는 ‘남’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8일 03시 00분


왜 내 아이만 이럴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새 학기가 시작되면 부모들의 “우리 아이만 왜 이렇죠”라는 질문이 늘어난다. 다른 집 아이들은 모두 잘해 나가는데 우리 아이만 유난히 덜커덕거린다는 것이다. 우선 너무 말을 안 듣는단다. 어떤 방법을 써도 우리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그리고 뭐든 너무 더디고 어려워하고 못한단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금방 배우고 척척 잘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며 걱정한다.

이런 부모들에게 내가 해주는 말은 다른 집 애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말 안 듣는 것은 아이들의 정체성이다. 아이들은 원래 말을 안 듣는다. 못하는 것도 그렇다. 아이들은 원래 배운 것이 많지 않아 당연히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런데 유독 내 아이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내 아이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잠깐씩 본다. 내 아이는 나만 아는 것이 너무 많다. 그중 못하는 것들이, 어수룩한 행동들이 그 잠깐씩 보는 아이들의 그것과 비교가 되면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사실 잘해 보이는 그 아이도 자기 부모 앞에서는 내 아이와 비슷하다. 말도 잘 안 듣고 못하는 것도 많다.

만약 누가 보아도 아이가 심하게 말을 안 듣고 생활연령에 비해 기능이 많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한숨만 쉬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를 찾아가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빨리 의논해야 한다.

전문가를 찾아가 봤더니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 아이의 부족한 면이 자꾸 눈에 띈다면 그때는 ‘나에게 통제적인 면이 있나’를 생각해봐야 한다. 통제적인 사람일수록 상대의 잘 못하거나 미숙한 면이 잘 보인다. 통제적인 사람은 대부분 좀 불안하다. 불안은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백 가지 중에 아흔 가지를 잘해도 열 가지가 더 눈에 보인다. 유독 내 아이의 부족한 면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바라볼 때 ‘내 생각에 너는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것밖에 못하니’ ‘넌 왜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계속 그걸 하니’ ‘이렇게 정성을 다해 키웠는데 왜 이 정도도 못 따라와 주니’ ‘이만큼 노력하고, 이만큼 사랑을 퍼부었으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야’ ‘이만큼 가르쳤으면 배워야 하는 것 아니야’ 등의 생각들이 너무 강하게 든다면 그 부모는 통제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우리 애는 감기에 자주 걸려요. 그래서 외출해서 돌아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하는데 마르고 닳도록 얘기해도 왜 그걸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밤새워 공부해서 일등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책 다 사주고, 학원도 보내주고, 놀이공원도 데려가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데 왜 공부를 못할까요.” “전 정말 아이한테 욕심 없어요. 그저 코 좀 잘 닦았으면 좋겠어요. 만날 안 닦고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녀요. 왜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어요.” “얘는요, 제가 더러워서 말을 못해요. 코딱지를 파서 꼭 입에다 넣어요. 아무리 말해도 고치지를 않아요. 아주 미치겠어요.”… 이런 것들도 사실 모두 통제적인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손 씻으라는 것도, 코 닦으라는 것도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아 미칠 것 같다면 그것은 지나친 것이다. 도덕적인 절대 가치, 사회적인 규칙 등은 반드시 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적인 것들은 계속 잘 가르쳐줄 뿐 아무리 부모라도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엄마들이 “아이가 내 마음대로 안 돼서 힘들어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원래 그래요. 그런데 엄마는 엄마 본인 마음을 엄마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나요”라고 다시 묻는다. 대부분 못한다고 대답한다. “아니,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해요”라고 말해준다. 자식도 탯줄이 끊기는 순간 ‘남’이다. 생판 모르는 ‘남’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니면 ‘남’이라는 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은 과도한 통제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는 조절을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법과 질서를 통한 통제는 국가와 사회가 평화롭게 유지되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 가정도 작은 사회라 적당한 통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통제는 부모와 아이 관계, 아이의 건강한 정서 발달을 해칠 수 있다.

우리 문화는 오랫동안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에게 하는 통제를 사랑으로 잘못 생각해 왔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상당히 통제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연인 사이, 부부 사이, 부모와 아이 사이… 상대를 과도하게 통제하면서 이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한다. 용서 받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과도한 통제는 사랑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 교육#과도한 통제#상대에 대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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