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실패 12번이나 경험했던 박필전씨…‘맨발 마라톤 전도사’가 된 이유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6일 14시 00분


2003년 모습.
2003년 모습.
박필전 씨(62·사업)는 마라톤으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사업 실패를 12번이나 했는데 마라톤 정신으로 번번이 일어나 아직도 생생하게 버티고 있다. 지금도 매일 달리며 사업도 잘 키우고 있다.

“24일이 어머니 삼우제였다. 어머니 상을 치르면서 5남매가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아팠다. 다들 어디가 아프다는 얘기뿐이었다. 나만 생생했다. 마라톤 덕분이다.”

2000년 지인의 권유로 마라톤에 입문한 박 씨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7~8km를 달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야 하루가 시작된다. 주말엔 20km를 달린다.

“새벽에 운동을 한 날과 안 한 날은 천지 차이다. 운동을 하고 출근한 날은 ‘완전 무장’을 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어떤 고난도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운동을 안 하면 뭔가 개운치 않는 느낌에 하루 종일 짜증이 난다.”

박 씨는 마라톤 계에선 ‘운산’으로 불리는 ‘유명 스타’다. 기록이 좋아서가 아니라 20년 가까이 늘 즐겁게 재밌게 달려서 마라톤마니아들이 다들 그를 좋아한다.

“2000년 3월 동아마라톤에 무작정 출전했다. 훈련이 안 된 상태에서 남들도 다 하기에 무작정 풀코스에 참가해 뛰었다. 무리한 선택이었다. 한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5㎞에서 포기하고 3일을 앓아누웠다.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따랐지만 마음만은 평온했다. 그때부터 마라톤에 미쳤다. 그때 알았다. 인도 신비주의자들에겐 마라톤명상이라는 게 있었다.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수련를 해야만 마음이 더 편해진다.”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간 박 씨는 달리면서 도를 닦는다고 표현한다.

“마라톤은 수련의 하나다. 산에 들어가 도를 닦기도 했고 명상에 빠져보기도 했지만 마라톤만큼 심신을 ‘해탈’에 이르게 하는 게 없었다. 마라톤하면서 명상하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2000년 4월 온라인 동호회인 ‘런너스클럽(이하 런클·http://cafe.daum.net/runners)’에 가입했다. 함께 해야 즐겁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런클은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함께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국 지역별로 따로 함께 훈련하고 각종 대회 때 만나서 우의를 다지고 있다. 현재 회원은 2만4000여명.

“2000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처음 풀코스를 완주했다. 3시간 52분.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기뻤다. 2002년 런클 회장에 도전해 당선돼 풀뿌리 마라톤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2017경주국제마라톤. 동아일보 DB.
2017경주국제마라톤. 동아일보 DB.

박 씨는 최근엔 ‘맨발 마라톤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 10여 년 전쯤이다. 등산을 하다 신발을 벗었는데 너무 상쾌하고 기분 좋았다. 그래서 산을 맨발로 타기 시작했다. 한라산과 설악산, 아차산, 관악산, 울릉도 성인봉까지 맨발로 올랐다. 산도 뛰었다. 그런데 솔직히 아스팔트를 달릴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나는 달린다 맨발로(백우진 저)’ 등 각종 책에서 아스팔트에서 뛰어도 된다고 해 달렸다. 그동안 풀코스를 46회 완주했는데 그중 3회를 맨발로 뛰었다.”

최근엔 산악마라톤(트레일러닝)을 맨발로 달리고 있다.

“지난해 산악마라톤 16km를 달려봤다. 너무 좋았다. 사람들은 발바닥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안 아프다. 오히려 방심하다 바위에 발등이 찍히는 경우는 있어도 발바닥을 다치진 않는다. 맨발로 달리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뾰족한 곳을 피하기 위해서 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처럼 사뿐 사뿐 달린다. 그러다보니 운동량도 더 많다. 관절에도 무리가 없다.”

‘족탈주(足脫走) 쾌변숙면(快便熟眠).’ 맨발로 달리면 배변도 잘되고 잠도 잘 온단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맨발로 달렸다. 최근에 들어서야 신발이라는 것을 신고 달렸다. 맨발로 달리면 앞꿈치로 착지한다.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발은 우리 몸에서 가장 멀리 있다. 게다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 동안 발은 우리 몸에서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발에 공급된 피가 종아리로 허벅다리로 올라오려면 중력을 떨쳐야 한다. 맨발 앞착지는 심장에서 가장 멀리 있는 반대편(정맥) 혈액 순환을 촉진함으로써 심장박동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지압효과까지 있다.”

맨발 달리기가 인간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무엇보다 ‘맨발의 아베베’로 알려진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우승했고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신발을 신고 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인간이 맨발로 달려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청계산을 맨발로 등반한 박필전 씨. 박필전 씨 제공.
청계산을 맨발로 등반한 박필전 씨. 박필전 씨 제공.
“대한민국은 맨발로 달릴 곳이 많다. 도심 주위에 야산이 많기 때문이다. 그 야산은 사람들이 등산을 하면서 잘 다져놓아 맨발로 달리기엔 안성맞춤인 상태가 됐다.”

박 씨는 수도권에 ‘제2의 계족산’을 만드는 게 꿈이다. 계족산은 대전에 있는 산으로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60)이 마사토를 깔아 맨발로 걷고 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맨발 마라톤대회도 열린다.

“맨발로 걷고 달리면 대한민국이 건강해질 것이다. 서울 근교 산에 마사토를 깔아 시민들이 아무 때가 맨발로 걷고 달리게 하면 병원 하나 짓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거둘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K-pop보다 더 좋은 상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 씨는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운동을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유치원 때부터 맨발로 걷게 한다. 왜 그렇겠나.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0교시 수업으로 운동을 시켰는데 대부분 명문대 갔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는 그렇게 할 수 없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울 매봉산에 마사토를 깔고 어린이 맨발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싶다.”

박 씨는 추운 겨울엔 맨발로 달리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17일 열리는 2019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90회 동아마라톤에서는 신발을 신고 달리고 5월부터 맨발로 달릴 계획이다.

“마라톤 인생 20년이 가까워 온다. 하지만 난 1년에 1,2번만 풀코스를 달린다.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 사실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사회생활도 해야 한다.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마라톤이 목표나 목표가 되면 안 된다.”

박 씨는 마라톤 전도사로 유준상 전 국회의원을 마라톤에 입문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준상 전 의원께서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마라톤을 권유했다. 2006년 4월 풀코스를 완주하셨다. 지난해 10월 춘천마라톤에서는 유 전 의원 희수(77세) 기념으로 완주했다. 유 전 의원은 이제 달리기 마니아가 됐다. 달리면 인생이 달라진다.”

박 씨는 99세까지 맨발로 산악마라톤을 100회 완주하는 게 목표다. 왜 100세가 아니고 99세일까.

“심리적 나이일 뿐이다. 힘이 있는 한 달린다는 얘기다. 달려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환갑을 넘긴 박 씨는 동년배에 비해 10년 넘게 젊어 보인다. 박 씨는 “매일 달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리는 게 그의 나이를 뒤로 가게 하고 있는 셈이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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