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72〉정약용이 사랑한 도라지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8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인생에서 제일 기쁠 때는 도소주(屠소酒) 마시는 그때라네.”

다산 정약용의 시집에 나온 한 구절이다. 다산은 유배지 전남 강진 보은 산방에 찾아온 지인의 술을 받아들고 기뻐하며 이처럼 노래했다고 한다. 도소주는 길경(桔梗)이라는 약초가 주재료고 방풍(防風), 육계(肉桂) 등의 약재도 들어가 있다. 옛 어른들은 1년 내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꼭 이 술을 찾아 먹었다. 일종의 세시 풍속주로 ‘면역제’였던 셈이다.

길경은 도라지를 말한다. 도라지는 전염병의 통로인 폐 경락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기관지 보호제로 쓰이는 용각산의 주성분이 도라지다. 도라지의 줄기에서 나오는 유액이 점액 역할을 하면서 기관지나 폐로 들어오는 미세먼지 등 이물질과 독소를 흡착한 뒤 녹여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용각산은 한방 고유의 처방인 감길탕을 응용해 만든 것이다. 감길탕은 감초와 길경으로 만들어지며 기관지염과 편도염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

길경은 인삼처럼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기능 강화작용을 하는 한편 길경 고유의 대식세포의 항균성을 강화해 염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한방의 고전 ‘금궤요략’에도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거나 가래가 많고 기침이 나면 감길탕 처방이 최선의 치료”라고 했다. 옛 전매청의 야심작인 ‘도라지 담배’도 도라지가 호흡기질환에 특효가 있다는 데 착안했을 터. 기관지를 병들게 하는 담배에 기관지 보호제인 도라지를 섞어 만든 것이다. 무조건 자연산이 좋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찬으로 먹기에는 밭에서 재배한 도라지가 훨씬 좋다. 산에서 캔 도라지는 쓴맛이 너무 강하다.

목이 쉬어 목소리가 맑게 나오지 않을 때도 도라지를 사용한다. 인조(仁祖)가 어머니 계운궁의 상을 치르면서 몸이 쇠약해지고 목소리가 작고 탁해지자 어의들은 ‘익위승양탕’이라는 보약 처방에 길경을 넣어 복용시켰다. 목의 염증에도 길경은 위력을 발휘했다. 영조(英祖) 41년, 영조가 갑자기 독한 감기에 걸려 침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목의 통증을 호소하자 어의들은 길경으로 미음을 만들어 복용시켰다. 도라지는 인삼과 생김새가 비슷해 가짜 인삼을 만드는 데도 사용됐다. 승정원일기 숙종(肅宗) 37년의 기록에는 도라지를 인삼처럼 위조해 만든 조삼(造蔘)이 큰 문제가 됐다. 약방 도제조들은 “도라지에다 인삼의 노두를 붙여 인삼인 것처럼 만들어 진상하는 일이 잦다”고 탄식한다.

인삼과 도라지는 이외에도 닮은 구석이 많다. 인삼은 6년근이 홍삼이 되고 그 연식이 넘으면 썩는다. 도라지도 6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3, 4년마다 터전을 옮겨 거름기가 없는 곳에 옮겨 심으면 처절한 자생력으로 20년도 넘게 성장해 약도라지가 된다고 한다. 좋은 환경보다는 극한 환경이 약도라지를 만드는 셈이다. 도라지 8g과 살구씨 12g을 물 300cc에 달여 복용하거나 도라지 정과를 복용하면 기침, 인후통, 미세먼지 등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크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도라지#약초#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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