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막마라톤, 긍정적인 중독[양종구의 100세 건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6일 03시 00분


김경수 서울 강북구청 마을협치과 과장(가운데)은 사막에서 한계를 극복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긴다. 2009년 나미비아 사막에서 시각장애인 송경태 씨(왼쪽)의 레이스 도우미를 할 당시 모습. 김경수 과장 제공
김경수 서울 강북구청 마을협치과 과장(가운데)은 사막에서 한계를 극복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긴다. 2009년 나미비아 사막에서 시각장애인 송경태 씨(왼쪽)의 레이스 도우미를 할 당시 모습. 김경수 과장 제공
양종구 기자
양종구 기자
김경수 서울 강북구청 마을협치과 과장(57)은 사막과 오지만 6400km 넘게 달렸다. 2003년 모로코 사하라 사막 243km를 시작으로 몽골 고비, 칠레 아타카마,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미국 그랜드캐니언 등 지난해까지 20개가 넘는 곳을 달렸다.

“2001년 가을, 집에서 빈둥대다 우연히 TV를 보게 됐는데 황량한 사막에서 짐승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에 한 줄기 바람이 불었습니다. 굳게 잠겼던 빗장이 덜컥하고 열리는 느낌이랄까. 그 순간 ‘저길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그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구청 말단직원으로 업무에 지친 몸 건강을 위해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동네 한 바퀴,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운동을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어떤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도 몰랐다. 완주한 외국 선수들의 사진을 보며 마음만 다잡았다.

그렇게 쌓인 경력은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 수준. 그는 풀코스를 한 번도 완주해 보지도 않은 채 무작정 2003년 4월 사하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열사의 뜨거운 날씨에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채 길을 잃고 헤매며 5박 7일 동안 243km를 달렸다. 발바닥 물집이 으깨어져 발을 짚을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하지만 완주에 성공했다는 감격에 모든 게 잊혀졌다.

“사하라는 내 삶의 축을 흔들어 놨습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나를 사하라로 내몰았지만, 사하라는 내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해줬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하라는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매일 고통이 이어졌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넘어선 나 자신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2013년 6월 5박 6일 동안 해발 3430m 높이의 산을 포함해 부탄 산악지대 200km 구간을 달리는 오지 레이스에 참가했을 때다. 레이스 첫날 종아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허벅지와 복부를 넘어 목까지 올라왔다. 결국 레이스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원주민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몸을 주물러 주기 시작했어요.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생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게 40분 남짓 마사지를 받자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기다시피 해서 첫째 날을 넘겼고 결국 전 구간을 완주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막과 오지에선 서로 도우면서 완주한다. 어려울 때 도우면 기쁨도 더 크다. 2007년 아타카마 사막에서였다. 한 일본 여자 선수가 협곡에서 저체온증으로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김 과장은 갖고 있던 핫팩과 침낭으로 몸을 덥혀 주고 CP(체크포인트)까지 부축해서 데려다주었다. “나중에 그가 ‘살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마냥 기쁘기보다는 극한의 순간에도 나눔이 필요하고 그런 조그만 나눔이 생명도 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친 데서 느껴지는 감동이 더 컸습니다.”

스포츠는 신체 활동을 통해 즐거움과 건강도 주지만 활용도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스포츠학계에서는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마라톤과 철인3종 등 극한 스포츠가 인기를 끈다는 분석이 있다. 심지어 ‘마라톤은 2만 달러 스포츠, 철인3종은 3만 달러 스포츠’라는 말도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각종 스포츠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배경에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정신적인 만족(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이를 ‘긍정적인 중독’이라고 정의했다. 김 교수는 “정서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기만의 만족을 찾는 경우가 많고, 이를 긍정적인 중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를 통해 이런 게 가능하다”며 “마약 도박 등 부정적인 중독은 몸에 해롭지만 스포츠를 통한 긍정적인 중독은 권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과장은 최근 발간한 책 ‘나는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에서 사막오지 경험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죽을 만큼 힘이 들 때 이 자리에 주저앉을 것인가 전진할 것인가, 이런 고민은 한계에 다다른 자만이 겪을 수 있는 ‘행복한’ 비명”이라며 “그 한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마라톤#사막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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