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팬데믹’을 대비하자[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3일 03시 00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가 언제든지 다시 유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아일보DB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가 언제든지 다시 유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보건당국의 통제가 가능한 수준인 50명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구의 경우 경북대병원이 중증환자를, 대구의료원과 대구동산병원(두 병원은 나중에 중증환자도 치료)이 경증환자를 주로 치료했다. 영남대병원과 대구가톨릭병원, 파티마병원은 중증, 경증환자를 모두 받았다. 이들 민간병원의 적극적인 참여는 코로나19 저지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민간병원은 병원당 1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환자들을 입원시켜 사망 최소화에 진력했다. 영남대병원의 중환자실을 책임진 호흡기내과 교수는 중증환자를 살리기 위해 아예 짐을 싸들고 병원에 들어가 숙식을 해결했다.

수많은 의료진의 헌신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결과로 코로나19 환자가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심하기엔 이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경증이나 무증상으로 진행되고, 전파력이 높은 데다 음성에서 양성으로 바뀌는 등 전문가들조차 예측하기 힘든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기전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1918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처럼 올가을 코로나19가 재유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3월 미국에서 처음 발생한 뒤 1919년 종식까지 3번의 파동이 있었다. 1918년 가을 스페인독감 2차 파동 때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가을이 되면 밀폐된 실내 생활이 빈번해져 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바이러스 유행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만 볼 수는 없다.

다행히 우리는 3개월 동안 감염질환에 맞서 많은 대응 방법을 배웠다. 사회적 거리 두기, 온라인 수업, 화상회의, 손 씻기, 재택근무 덕분에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주의보가 지난달 27일 일찌감치 종료됐다. 예년보다 12주(3개월)나 빨랐다. 독감도 치명적인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2018년에만 2만3280명이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다. 적어도 올해는 독감에 따른 폐렴 사망자가 감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시사한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독감, 감기, 결핵 등 호흡기 감염질환은 국민 스스로 또는 보건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따라서 앞으로 독감 등 감염질환이 어느 지역에서 시작한다면 해당 지자체가 먼저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펼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감염병 대책을 대개 개인에게 맡겼다면 앞으로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손 씻기와 마스크 사용, 아프면 집에 머물기 등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온 국민이 절실히 인식한 건 커다란 경험이다. 이는 가을에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는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생활방역이자 개인위생 관리이기도 하다.

특히 손 씻기는 과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신종플루가 나타났을 때도 강조됐지만 이번처럼 전 국민이 체험·실천한 건 유례가 없었다. 심지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퇴근을 하지 못하는 회사도 있었다. 이제 고열, 몸살 등 몸이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게 보편화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감기나 몸살에 걸려도 약을 먹고 출근 혹은 등교하는 게 보통이었다. 코로나19는 이런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절실히 가르쳐주고 있다.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선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파킨슨병 환자나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 받을 수 있는 ‘비대면 진료’를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 다른 감염질환이 발생했을 때도 지역별로 비대면 진료 형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선별진료소에서도 의사가 비대면 진료를 통해 감염을 최소화한 사례가 있다. 처방약도 약사와의 비대면을 위해 ‘약 배달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게 좋다. 보건당국은 ICT를 활용한 비대면 서비스 인프라를 정착시키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조목조목 챙겨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이미 가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앞으로 코로나19 종식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 가 본 길이기 때문에 혁신적인 생활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면 집에 있기, 개인위생 관리,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새로운 일상이 제대로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코로나19#2차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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