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TNT타임]“골프나 중계나 흐름 잘 타야” 발품 팔아 엮어낸 최장수 해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4일 11시 41분


1997년부터 한 우물 김재열 해설위원
한국 골프의 황금기 지켜본 산 역사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KLPGA챔피언십 해설을 맡은 김재열 해설위원. 대회 장소인 레이크우드CC에서 포즈를 취한 김 위원은 국내 최장수 골프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열 위원 제공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KLPGA챔피언십 해설을 맡은 김재열 해설위원. 대회 장소인 레이크우드CC에서 포즈를 취한 김 위원은 국내 최장수 골프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열 위원 제공
24년째 마이크 앞에 서고 있는 국내 최장수 골프 해설위원은 마치 처음 카메라 앞에 나설 때만큼 가슴이 설레 보였다. 코로나19를 뚫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가 마침내 재개됐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김재열 골프 해설위원(60)이다.

김재열 위원은 14일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CC(파72)에서 개막한 제42회 KLPGA 챔피언십에서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와 함께 해설을 맡았다. 1라운드 중계에 앞서 그는 이날 오전 3시에 눈을 뜬 뒤 오전 5시 골프장에 도착해 적막이 흐르는 18홀을 돌며 코스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린에서는 공을 직접 굴려보며 스피드와 브레이크를 체크했고, 핀 위치에 따라 남은 거리와 그린 경사를 꼼꼼하게 메모해 뒀다. 발품에서 비롯된 생생한 정보는 그의 해설이 가진 차별화된 장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계방송을 위해 김재열 위원이 코스 답사 후 꼼꼼하게 적어 놓은 레이크우드CC 18개 홀 그린 분석도. 김재열 위원 제공
중계방송을 위해 김재열 위원이 코스 답사 후 꼼꼼하게 적어 놓은 레이크우드CC 18개 홀 그린 분석도. 김재열 위원 제공
김재열 위원은 “그동안 1000라운드 넘게 생중계를 했지만 늘 새로운 기분으로 준비했다. 오늘은 더욱 특별한 느낌이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 세계 골프 투어가 올스톱됐지만 다행히 세계가 인정한 방역시스템 덕분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KLPGA투어가 열리게 된 데 자부심을 느낀다. 아무 탈 없이 투어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계에 앞서 박세리와 골프장 현장답사를 하고 있는 김재열 해설위원. 한국 골프 전설 박세리와는 함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계에 앞서 박세리와 골프장 현장답사를 하고 있는 김재열 해설위원. 한국 골프 전설 박세리와는 함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올 시즌 KLPGA투어 판도에 대해서 “2019년에 이어 최혜진의 강세가 예상된다. 그 독주를 누가 막느냐가 흥미로울 것 같다. 지난 시즌 신인 때 뛰어난 활약을 펼친 조아연, 임희정, 이소미 등도 2년차를 맞아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기대를 모은다”고 말했다. 주목할 선수로는 강심장으로 유명한 이다연을 꼽았다.

미국 유학 시절 골프와 인연을 맺은 김 위원은 미국 켄터키 주의 미니투어에서 선수로 활동하며 우승 경험도 했다. 생애 베스트 스코어는 9언더파 63타. 켄터키 주에서 골프 교습가로 활동하다가 귀국 후 1997년 한국스포츠TV에서 골프 중계를 시작한 뒤 줄곧 한 우물을 파고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남자골프 대표팀 최경주 감독, 왕정훈, 안병훈과 카메라 앞에 선 김재열 위원. 동아일보 DB
2016년 리우올림픽 때 남자골프 대표팀 최경주 감독, 왕정훈, 안병훈과 카메라 앞에 선 김재열 위원. 동아일보 DB
필드에서 숱한 명승부의 현장을 지킨 김 위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 순간으로 네 가지 장면을 언급했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 투혼 끝에 우승한 US여자오픈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박인비 금메달, 2007년 금강산에서 열린 KPGA투어 NH농협오픈, 2015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프레지던츠컵이다. 박세리는 어려운 외환 위기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숱한 ‘세리 키즈’를 배출한 한국 골프의 전설이다. ‘골프 여제’ 박인비는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한 리우에서 세계 정상에 서며 한국의 저력을 만방에 알렸다. 금강산 골프 대회는 KPGA 사상 첫 북한에서 열리면서 평화의 의미를 더했다. 미국과 인터내셔널(유럽 제외) 팀의 대결인 프레지던츠컵은 국내 골프 대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대회 하나하나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에 김 위원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골프 역사와 호흡을 함께 한 셈이다. 명인 열전이라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를 1997년부터 해마다 중계하고 있는 것도 남다른 경력이다. 올해 마스터스는 코로나19로 4월에서 11월 개최로 연기됐다. 봄꽃이 만발한 예년과는 달라질 대회 분위기가 그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갈 것 같다. 김 위원은 “골프나 해설이나 흐름이 중요하다. 그 부분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더욱 묘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중계를 준비하고 있는 김재열 해설위원. 동아일보 DB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중계를 준비하고 있는 김재열 해설위원. 동아일보 DB
당초 7월로 예정된 도쿄올림픽 골프 해설을 위해 김 위원은 일찌감치 경기 장소인 일본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CC를 방문해 코스 답사를 하기도 했다. 올림픽 연기가 그에게도 아쉽기만 하다. 김재열 위원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더욱 긴 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철저하게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4년 전 리우 때처럼 현장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울컥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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