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비정규직 갈등, 상생 해법 찾아야[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3일 03시 00분


10일 보라매병원 앞에서 병원 노조가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10일 보라매병원 앞에서 병원 노조가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은 서울시가 세웠지만 운영은 서울대병원이 맡고 있다. 김병관 보라매병원장(52)은 2016년 병원장이 됐다. 공공의료원장으로는 파격적인 나이였다. 게다가 보기 드물게 올해까지 3연임 중이다. 그가 병원장을 맡은 뒤 보라매병원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는 게 의료계 안팎의 평가다.

그가 병원장으로 있을 때 보라매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적정성 평가에서 14개 전 항목 1등급을 획득했다. 한 해 연구비 수주 규모도 100억 원을 돌파했다. 임상과 연구가 함께 뿌리내리는 병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증했던 올 2월 공공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드라이브스루에 버금가는 워크스루를 국내 처음 도입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기여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의료계 곳곳에 도입되는 가운데 최근 보라매병원은 최초로 모바일 문진시스템을 실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보라매병원 성장의 비결이 궁금해 최근 김 병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라 흔쾌히 허락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훌륭한 병원장의 자격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올해 보라매병원의 노사 문제였다. 노사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직접 병원 성과를 홍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 병원장 취임 후 지금까지 노사 관계에서 큰 갈등은 없었다고 한다. 가급적 대화를 이어가면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노사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최근 필자가 방문한 보라매병원에선 노조가 천막을 치고 80일 가까이 농성 중이었다.

노조는 사실상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약 250명이다. 처음에 정규직 전환을 위해 보라매병원 노사가 합의한 인원은 181명. 노조 측은 여기에 60여 명을 추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병원 측은 노조의 요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한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결정적 이유는 정규직 전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사합의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서울대병원은 비정규직 근로자 614명을 노사 합의에 따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덕분에 매년 노사 갈등으로 시끄러웠던 서울대병원은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도 큰 잡음이 나지 않았다. 노사 간의 화합을 통해 훌륭한 상생 관계를 이루게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서울대병원의 정규직 전환은 보라매병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라매병원은 노조가 기존 서울대병원의 노사합의서에 명시되지 않은 직종까지 정규직 전환을 추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노조 측은 서울대병원 노사가 작년에 작성한 파견용역 정규직 전환 노사합의서에 추가 직종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서울대병원이나 보라매병원 등의 공공의료기관 행정직에 들어가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앞서 인천국제공항 사례에서도 봤지만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늘 뜨거운 감자인 이유다. 병원의 경우 보통 인건비 비중이 매출의 50∼60%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병원은 효율성 및 전문성 제고와 시민 편의 증진을 위해 매번 필수인력을 제외한 일부 업무를 외부 인력에 맡기고 있다. 특히 공공의료기관의 경우 대부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 보라매병원에도 140억 원의 예산이 지원됐다. 그렇다 보니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워낙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극적 타결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의료계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보라매병원 노사 양측이 상생을 위한 타협점을 찾기를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보라매병원#병원 노사#정규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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