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에도 괴로워한 현종[이상곤의 실록한의학]〈9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8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현종은 평생 종기를 달고 살았다. 재위 10년이 되자 뒷목과 쇄골 부위를 둘러싸고 종기가 연달아 생기면서 목숨까지 위협했다. 현종은 지루하게 계속된 예송논쟁 속에서 송시열 윤선도 같은 신하들에 휘둘리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말이 논쟁이지 정통성 시비인 만큼 물러설 수 없는 논리의 전쟁이 죽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특히 할아버지 인조의 장손인 경안군 이석견은 자신의 왕좌를 흔드는 존재였다.

동의보감은 종기의 원인을 화(火·스트레스)나 소갈증(당뇨) 때문으로 본다. 현종은 10년 전 일을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행동으로 옮길 정도의 내향성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재위 10년, 현종은 갑자기 두통과 염청(厭聽) 증상을 호소한다. 염청은 지금으로 말하면 청각과민증으로, 특정한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심하면 발작까지 일으킨다. 평소 안질이 심해 서류 보기도 힘들어하던 현종은 사소한 소리에도 예민해하면서 대신들과의 대화조차도 불편해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체질이 약해 일찍 세상을 떠난 영조의 첫째 아들 효장세자도 청각과민증을 호소했다. 심한 독감의 후유증이었다. 영조는 효장세자의 증상에 대해 “누군가 문을 열면 문을 닫게 하고 사람 소리가 들리면 더러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어의들은 온갖 약과 음식으로 치료에 나섰지만 세자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의학에서 청각은 수면에 물체를 비추는 수영물(水影物)과 같다고 봤다. 물이 없으면 비출 수 없고 비추어도 바람이 심하게 불면 잘 보이지 않거나 세게 들리며, 물이 줄면 작게 바람이 불어도 심하게 흔들린다. 여기서 물은 귓속의 림프액을 상징한다. 현종은 스트레스로 바람이 심하게 불어 같은 소리도 심하게 들리는 것과 같은 상태였고, 효장세자는 체력이 약해 물이 줄면서 작은 소리도 크게 흔들려 들리는 증상이었다.

청각과민은 외부 소리를 크고 불쾌하게 느끼는 증상이다. 영국에서 발표된 논문에도 뇌의 감정영역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사람이 일상적인 소음을 짜증나게 여긴다고 보고하였다. 청각과민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안면신경의 역할이다. 안면신경은 귀의 고막 뒤에서 등골근육을 움직여 큰 소리를 적절한 소리로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불면증이나 수면 부족, 극심한 스트레스는 신경을 약화시켜 외부 소리에 예민해진다. 이외에도 갱년기 여성의 경우 호르몬 변화나 스트레스로 자율신경 흥분이 되면 청각과민을 불러온다.

대나무 밭에 바람이 불면 대나무 소리가, 소나무에 바람이 불면 소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듯 소리는 외부에서 들어와 나의 몸과 마음에서 다시 메아리쳐 나오는 내가 내는 소리다.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소리의 질과 양도 변화하는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층간소음도 몸과 마음의 평안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잣은 마음을 안정시키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허약한 것을 도와준다. 신라시대부터 인삼과 함께 중국 황제에게 선물한 신토불이 최고의 약재다. 특히 심리적 요인이 많은 청각과민에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현종#소리#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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