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자[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5일 03시 00분


26일 요양병원 환자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한 간호사가 코로나19 예방접종 교육을 받으며 백신 접종용 주사기를 들고 있다. 동아일보DB
26일 요양병원 환자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한 간호사가 코로나19 예방접종 교육을 받으며 백신 접종용 주사기를 들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최근 일부 대학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자 서울시는 관내 종합병원 57곳에 ‘모든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 간병인을 대상으로 2주마다 진단검사를 실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병원들과 의료진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시는 의료기관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일종의 극약처방을 한 셈이다. 그러나 병원과 의료진의 설명은 다르다. 서울시 방침에 따르면 병원마다 매일 수백 명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 예컨대 1만 명이 넘는 종사자가 있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2주 동안 매일 700명이 넘는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상황이 생긴다. 보유한 검사 장비를 모두 가동해도 검사량에 한계가 있어서다. 코로나19 검사 장비를 의심환자가 아닌 내부 직원용으로만 사용할 판이다.

코로나19 검사 대상 선정은 역학적 근거를 따져 정해야 한다. 이 같은 점에서 서울시 결정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의견이다. 서울시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하던 2015년 6월에도 방역을 위해 ‘극약 처방’을 내린 적이 있다. 메르스에 걸렸던 의사가 재건축조합 행사와 세미나 등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두 행사에 참석한 1700여 명을 사실상 잠재적 감염자로 본 것이다. 참석자 중에서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으면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다소 무리가 있어도 방역을 강도 높게 실시해야 된다는 계기가 된 점에선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메르스 때처럼 여전히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극약 처방도 나름 큰 영향력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기존 방역 패러다임에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국내 제약사인 셀트리온에서 생산된 항체치료제도 각 병원에 공급돼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항체치료제는 60세 이상이거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기저질환(심혈관계, 만성 호흡기계, 당뇨병, 고혈압 중 하나 이상)을 가진 경증환자에게 투여하는 치료제다. 지금까지는 손쓸 수 없이 지켜만 봤던 환자들에게 이제는 뭔가 투여할 수 있는 치료제가 나온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백신과 치료제가 앞으로 계속 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방역에 있어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신종플루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신종플루도 초창기 때 강력한 방역 중심으로 시스템이 가동됐다. 하지만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지 않았고 타미플루와 같은 독감치료제를 통해 예방 또는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방역 중심이 아니라 걸리면 병원을 찾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가장 큰 인식 변화는 신종플루를 매년 찾아오는 독감 바이러스처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코로나19도 이제 독감처럼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도 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변이 또는 변종이 생길 것이다. 다행히 일부 RNA 백신의 특성상 변종이 생겨도 금방 이에 대항할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하기 전에 우리가 몇 가지 알아야 될 것이 있다. 백신의 효과가 80%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내 몸에 그만큼의 방어 능력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80%의 효과라는 건 100명이 맞으면 80명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즉 백신을 맞아도 20명은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접종 후에도 20명이나 감염되는 백신을 왜 맞아야 되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을 통해 집단면역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80% 백신의 효과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60∼70%만 되어도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20명이 여전히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을 맞아도 계속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하며 당분간 모임도 기존처럼 최소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스라엘처럼 국내에 들어오는 백신의 양이 충분해 전 국민이 한꺼번에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백신은 항상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다. 이번 백신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근데 대개는 큰 부작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 불안에 떨지 않으면 좋겠다. 보건당국도 이럴 때일수록 실시간으로 부작용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밝혀 백신의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방역#패러다임#코로나19#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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