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최대 리스크, 황혼이혼[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1일 07시 00분


노후를 위협하는 3대 가족리스크(下)-황혼이혼
|유복한 노후 꿈꿨는데, 재산도 연금도 반 토막
|고독한 노년, 고독사(死)로 이어지는 지름길
|황혼이혼은 대체로 남성에 더 치명적
|퇴직 자녀결혼 등 큰 환경변화 동시에 몰려와 충격 증폭
|가장 큰 노후대책은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

지난 회 100세 카페에서 가족과 관련된 노후 복병으로 자식 리스크와 간병 리스크를 든 바 있다. 그런데 더 큰 위협요인으로 황혼이혼을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황혼이혼은 특히 남성에게 더 불리하다거나, 방심하고 있다가 ‘당하면’ 치명적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이 위기, 슬기롭게 피해갈 방법은 없을까.

결혼이 영원한 행복의 약속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에서는 20년 이상 해로한 부부가 이혼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동아일보 DB
결혼이 영원한 행복의 약속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에서는 20년 이상 해로한 부부가 이혼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동아일보 DB

● 지난해 이혼 부부 10쌍 중 근 4쌍이 황혼이혼
자녀를 모두 성장시킨 뒤 오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부부가 늘고 있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한국의 대법원과 통계청은 결혼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을 황혼이혼으로 분류한다. 1990년만 해도 전체 이혼건수의 5.1%에 불과했던 황혼이혼은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에는 38.7%를 차지했다(표 참조).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거의 4쌍이 황혼이혼이었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해로한 부부가 갈라서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시대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재산분할에서 여성 몫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혼을 자연스러운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 경제력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이 아직 젊다고 느끼는 데다 개인의 자유와 삶의 질을 중시한다. 여기에 고령화로 기대수명이 늘다 보니 “앞으로 30년을 더 참으며 살 수 없다”며 독립을 선언하는 것.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다주택 중과세를 피해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노부부가 부쩍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소중한 내 인생, 노후 30년이라도 자유롭게 살겠다”
황혼이혼을 원하는 쪽은 아무래도 여성이 많다. ‘황혼이혼’이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래했다. 남편이 은퇴하고 퇴직금을 받은 뒤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급증해 사회문제가 됐다.

“남편이 집에 있다 생각하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요”. 이보다 앞서 1991년 일본 정신신체의학 학회지에 은퇴남편증후군(RHS·Retired Husband Syndrome)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일밖에 모르던 가부장적 남편이 은퇴 후 집에만 머물자 스트레스를 받은 늙은 아내들이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증세는 심한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위염, 두드러기 등 다양했다. 일종의 ‘화병’이라 할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60%의 아내들이 RHS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이런 은퇴 남편을 일컬어 한국의 ‘삼식이(세끼 모두 집에서 먹는 남편)’처럼 일본에서는 ‘젖은 낙엽족(낙엽이 비에 젖어 잘 쓸어지지 않는 상태를 빗댄 말. 귀찮게 방해만 되는 남편을 일컬음)’, ‘나도 족(私も族·아내가 가는 곳 어디든 “나도 가겠다”며 따라나서는 남편)’ 등의 유행어가 생겨났다.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별다른 준비 없이 은퇴해 거실 소파를 장악하고 TV나 신문만 보는 남편들은 ‘대형쓰레기’라 불리기도 하고 “모름지기 가장(家長)은 건강해서 외출한 상태가 최고”라는 말이 회자됐다.

여기 더해 남편이 왕년의 ‘상사’ 기질을 발휘해 집안일에 일일이 간섭하며 잔소리를 시작하면 아내들도 폭발해 앙갚음하듯이 이혼장을 내밀게 된다. 인간의 노화는 정신적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법. 나이 들수록 이해도가 떨어지고 고집이 강해지며 잔소리가 심해진다.

황혼의 부부가 집안에서 마주할 기회가 늘어서일까. 코로나 사태 이후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지만 황혼 이혼 비중은 오히려 늘어났다. 동아일보 DB
황혼의 부부가 집안에서 마주할 기회가 늘어서일까. 코로나 사태 이후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지만 황혼 이혼 비중은 오히려 늘어났다. 동아일보 DB


●중년 남성들이 ‘나는 자연인’에 꽂히는 이유
반대로 최근 한국에서는 남편이 먼저 황혼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늦게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거나 아내의 잔소리나 생활비 등 경제적 요구가 싫어 자유를 택하겠다는 남편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남성들 사이에 ‘나는 자연인’류의 프로그램이 인기인 이유도 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혼전문변호사들은 이 경우 새로운 파트너가 생긴 케이스가 적지 않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조혜정 이혼전문 변호사는 수많은 상담 속에서 황혼이혼하는 부부의 공통점을 다음 8가지로 추려냈다. △정서적 이혼상태가 상당기간 이어졌다(한집에서 살지만 대화없이 몇년) △돈 때문에 심하게 싸운 경험이 있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내 돈을 쓰는 가족을 가차없이 공격한다) △주로 생활비를 벌던 사람이 은퇴했다 △결혼해서 생긴 가족보다 원 가족(남성은 본가, 여성은 친정)과 더 가깝다 △집안이 갈라져 있다(자녀가 부모 중 한쪽 편을 든다) △한쪽이 지배하고 복종을 강요한다 △외도 폭언 폭행 중 한가지 이상이 나타난다 등이다. 조 변호사는 이중 5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이혼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지만, 2~3가지 정도라면 남들보다 나은 상태니까 문제를 개선할 길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황혼이혼 소송에서는 재산분할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자녀들은 이미 장성했고 혼인기간이 길수록 재산 증식과 보존에 대한 기여도가 많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법원 근처 변호사 사무실 밀집지역. 동아일보 DB
황혼이혼 소송에서는 재산분할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자녀들은 이미 장성했고 혼인기간이 길수록 재산 증식과 보존에 대한 기여도가 많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법원 근처 변호사 사무실 밀집지역. 동아일보 DB


● 황혼이혼에서는 재산분할이 큰 이슈
젊은 부부의 이혼에서 위자료나 양육권, 양육비가 쟁점이라면 황혼이혼에서는 재산분할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분할 대상은 원칙적으로 혼인 중 부부가 함께 협력해서 모은 재산이다. 여기에는 퇴직금이나 연금 등 장래 수입도 포함된다.

재산분할은 결혼기간이 길수록 부부 양쪽에 비슷하게 배분되기 쉽다. 예컨대 혼인 전부터 배우자가 소유하고 있었거나 상속 또는 증여받은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대상에서 제외되지만, 혼인기간이 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업이나 경제활동이 없던 주부라도 그 재산의 유지 및 증식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평생 외벌이로 혼자 벌어 자산을 형성했고 자신의 명의로 연금을 부었다 해도 그 기간 배우자의 내조가 있었다면 절반은 배우자의 몫이 된다.

법리가 이렇다보니, 시중에는 노후에 이혼당하기 싫은 쪽이 배우자에게 재산을 전부 넘겨놓으라는 ‘꿀팁’도 돌아다닌다. 집도 땅도 예금도 모두 배우자 이름으로 돼 있다면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고 싶어도 자기 명의의 재산을 분할해줘야 할 판이니 이혼 방지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황혼이혼에서는 합의이혼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일단 소송으로 가게 되면 재산분할의 대상, 기여도에 대한 입증이 핵심 쟁점이 된다. 분할 결과에 따라 노후의 삶의 질이 결정되는 만큼, 이혼 소송에서는 피튀기는 ‘쩐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남성에게 더 치명적
황혼이혼은 부부 모두에게 많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안겨주지만 남성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첫째 부부 모두에게 경제적인 타격이 크다. 평생 모은 노후자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연금도 절반이 될 수 있다. 한 집이 두 집으로, 모든 것을 나누다 보면 낭비도 많다. 황혼이혼을 결심하는 순간 이후 경제적 생활수준은 확 떨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둘째 외로운 노년을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 평생 열심히 살아왔는데 인생 황혼기에 잃어버린 동반자의 빈자리는 크다.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 의지할 존재가 없어진다. 시기적으로 퇴직과 겹치다보니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고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허무감과 우울감에 휩싸이기 쉽다. 점차 사회활동이 줄고 고립된 생활을 하다보면 종착역은 고독사(死)가 될 수도 있다.

셋째 살림 경험이 없는 남성이라면 갑작스런 자취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건강관리에 게을러지거나 삶의 동력을 잃기 쉽고 우울증이나 자살 빈도도 높아진다.

이 부분은 특히 남성이 불리한데, 이는 사별 후 남녀의 반응차이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많은 조사에서 남편이 먼저 사망한 부인들은 얼마간의 상실과 우울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건강이 좋아지고 인생만족도가 높아지며 장수했지만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남편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그리 오래 살지 못했다.

● 황혼에 마주한 부부, 서로 존중과 배려를
결혼도 이혼도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혼은 적극적으로 감행해야 한다. 예컨대 폭력이나 폭언, 외도가 상습적인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으며 살아왔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경우 과감하게 이혼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많은 리스크를 져야 하는 이혼보다는 현상유지를 위한 노력이 우선이다.

고혜정 변호사는 “가장 큰 노후대책은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가 많아도 내가 병으로 몸져눕게 된다면 곁에서 보살펴줄 사람은 결국 배우자입니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지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계는 누적되는 법이다. ‘노후의 재앙’ 황혼이혼을 피하려면 스스로 변화하고 가족, 특히 배우자와 평소에 돈독한 인간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은퇴전문가 오가와 유리가 제시하는 ‘은퇴남편 관리법 15조’(그래픽 참조)는 이 시기 부부 모두에게 참고가 될 듯하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 이혼은 현실-황혼이혼 사전 체크리스트
그럼에도 이혼을 고려하는 경우라면 점검해볼 것이 있다. 시중에 도는 황혼이혼 사전 체크리스트를 살펴보자. 아래 질문에 ‘아니오’가 많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이혼은 현실이다. 감정적으로 하는 이혼은 인생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해야 한다.
황혼이혼 사전 체크리스트

1. 내가 이혼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2. 이혼 후 살아갈 하루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나. 이때 후회 없이 행복할 수 있나
3. 이혼 후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나
4. 이혼 후 필요한 한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계산해봤나
5. 부족할 수 있는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준비돼 있나
6. 이혼 후 경제적으로 전보다 못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7. 주변에 도움 받을 가족이나 지인이 있나. 특히 자녀들의 이해와 지지를 받고 있나
8. 협의이혼을 할지 재판이혼을 할지 판단이 섰나
9. 재판이혼을 해야 한다면 승소할 확률에 대해 변호사와 상담해본 적 있나
10.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 상대의 유책 또는 사실관계를 입증할 자료를 가지고 있나
11. 실제 받을 수 있는 재산분할과 위자료 액수 범위를 대략이라도 알고 있나
12. 배우자 재산상황을 파악하고 있나. 배우자가 임의로 하는 재산처분을 막아 공동재산을 보전할 방안을 알고 있나
13. 노령연금을 비롯, 각종 연금에 대한 분할연금 수급권에 대해 확인해봤나
14.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지낼 거처는 준비됐나
15. 재판을 위한 변호사 선임비용이 얼마인지 알고 이를 마련할 수 있나
16 이혼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시작임을 확신하고 있나


※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건강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서영아의 100세 카페#황혼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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