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자동차보험, 규제보다 형평성 따져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4일 03시 00분


최근 ‘자동차보험 진료비 증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독점적 정보력을 가진 손해보험사에서 기계적인 수치를 내놓으면 매년 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된다. 특히 ‘한의과 진료비가 의과 진료비를 앞질렀다’며 날을 세우기도 한다.

자동차 사고 중상자 중 한의과 치료를 받은 환자는 지난해 기준 149만6752명, 의과 치료를 받은 환자는 153만8933명이다. 자동차 사고 중상 비율이 꾸준히 감소한 반면 한의과 치료를 받는 환자 수가 의과와 엇비슷하게 됐다. 이를 지나치게 기형적 현상으로 해석해 ‘한의과 진료비가 보험료 상승의 주범’인 양 오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최근엔 경상 환자 진료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규제책들이 마련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7월 15일 행정예고를 통해 ‘진단서 제출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통사고 경상 환자가 4주를 초과해 치료받으려면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자칫 의사의 진료행위를 검열하고, 환자들의 치료 욕구를 통제하겠다는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의계를 중심으로 고시 개정 재검토 요구 등 반발이 거세다.

‘국민 건강권’과 ‘치료선택권’ 차원에서 들여다보자. 2009년 10월 ‘실손의료보험 표준화’라는 명목 아래 한방비 급여 진료비가 보상대상에서 제외됐다. 환자들의 건강권과 선호도를 무시한 일방적인 규제가 시작된 지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랜 기간 누적된 인위적인 변화는 국내의료시장 왜곡 등 여러 부작용을 불러왔다. 의과 치료 분야에만 실손의료보험이 적용되면서 한의과 치료를 원하는 많은 환자들의 치료 선택권이 제한됐다.

동시에 의과-한의과 보장성이 같은 자동차보험에서는 오히려 한의 치료 쏠림이 나타났다. 의사 입장에서는 실손보험으로 더 제약 없는 치료를 할 수 있는데 굳이 제약이 많은 자동차보험으로 환자를 치료할 동기가 부족하다. 의사들이 자동차보험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지 않은 결과 2021년 기준 전체 의원의 약 17.4%만이 자동차보험을 청구하고 있다.

소외받은 자동차 사고 환자들은 접근성이 높고 더 적극적으로 진료해주는 한의과 치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의사들 입장에서는 한방비급여가 실손에 적용되지 않아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많은 가운데, 자동차보험에서는 환자에게 비용 부담을 주지 않고도 충분한 치료를 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적극적으로 자동차보험 환자를 유치하게 된다.

한의과 치료에 대한 보장성 강화와 실손보험 적용은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 사항이다.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는 한방비 급여에 대한 실손보험 적용 표준약관 개정을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한의계는 보험회사들에 협조하며 한방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한의과 비급여진료의 실손보험 적용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실손보험의 만성적인 손해율 개선을 위해 4세대 상품을 출시했다. 보험료를 낮춰 가입 전환에 힘을 쏟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호응이 너무 낮다. 4세대 실손에 한의 진료비 보장을 추가한다면 기존 가입자들의 전환 가입 유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급여 진료비를 특약으로 구성하고 그 사용에 따라 할증되는 구조이므로 과잉진료의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이는 실손보험의 손해율 개선뿐만 아니라 한의진료의 자동차보험 쏠림을 상쇄하는 묘책이 될 수 있다.

문제를 규제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자동차보험의 지나친 규제는 환자로 하여금 교통사고 치료를 성급히 중단하게 만들고 건강보험의 재정 낭비를 야기한다. 단순히 규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 건강보험의 특성과 그 형평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봐야 한다.

#헬스동아#건강#의학#전문의 칼럼#자동차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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