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암보다 무서운 ‘폐고혈압’ 극복하려면 정책적 지원이 먼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5일 03시 00분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
(가천대길병원 심장내과)

고혈압은 전신으로 가는 동맥의 압력이 높아져 머리, 눈, 심장, 콩팥, 말초혈관 등 주요 장기에 합병증을 일으킨다. 삶의 질이 떨어지고 사망에 이르는 가장 흔한 만성질환이다.

이름도 생소한 ‘폐고혈압’은 폐를 지나는 혈관 압력이 높아져 ‘우심실부전(심부전)’과 ‘심장 돌연사’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난치성 ‘질환군’이다. 국내에는 국민의 1%인 약 50만 명이 폐고혈압 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제일 많은 것은 심부전에 의한 폐고혈압으로, 대부분 나쁜 예후를 보이는 중증 상태다.

특히 폐고혈압 중 하나의 군인 ‘폐동맥고혈압’은 40대 후반 중년 여성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치료를 하지 못하면 2, 3년 내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문제는 증상이 갱년기 증상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쉽게 피곤하고, 약간 숨이 차고 붓는 등 구분하기 힘들어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폐동맥고혈압’의 경우 현재 완치 방법이 없다.

하지만 폐고혈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표적치료제들이 개발되면서 치료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희망의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최초로 등록사업을 시행하고, 2017년 대한폐고혈압연구회가 생겨 인식 개선과 조기 발견이 이뤄졌다. 또 표적치료제의 병용 투여 등에 힘입어 현재 5년 생존율 71.5%, 평균 생존기간이 2.6년에서 13.1년까지 늘었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5년 생존율이 90%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치료 성적이 일본에 뒤처지는 이유는 아직도 폐동맥고혈압과 관련한 인식이 낮고 정부와 다국적 제약사들의 무관심 속에 우수한 치료제 도입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조기 발견’과 제대로 된 ‘강력한 병합 치료’가 늦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환자들뿐 아니라 1차 의료진들이 이 질환이 의심되면 보다 빠르게 심초음파 검사를 하고 우심도자 검사로 확진해서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이어 강력한 병합요법, 다학제 치료 등을 통해 폐동맥고혈압을 조절함으로써 생존율은 물론이고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우수한 치료제 도입에 대한 협조와 ‘폐고혈압 전문센터’ 지정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더 이루어진다면 질병 극복을 넘어 폐동맥고혈압 정복의 길이 머지않으리라 기대해 본다.

#폐고혈압#극복#정책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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