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 A 씨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그가 받아야 했던 응급 수술은 ‘뇌동맥류 결찰술’. 국내 ‘빅5’ 병원 중 하나인 아산병원에서도 휴가와 출장 등으로 당시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한해 2만 명 이상이 뇌출혈로 쓰러지지만 전국에서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13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료계에선 필수의료 분야에 너무 낮은 진료비(수가)가 책정돼 있는 상황이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위험부담이 큰 수술을 하고도 ‘대가’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다 보니 피부과, 성형외과 등 ‘편하고 돈이 되는’ 일부 과목으로 의사들이 쏠리는 현상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필수의료 수술인 뇌동맥류 결찰술에 대한 수술비는 문재인케어가 시작된 2018년 이후 사실상 제자리걸음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 뇌동맥류 결찰술 수술비, 코 성형수술보다 적어
4일 국민의힘 백종헌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뇌동맥류 결찰술에 매겨진 수술비는 248만9890원이다.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2018년 243만5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동안 고작 2.4%오르는 데 그쳤다. 이 수술 수술비가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다른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는 꾸준히 올랐다. 같은 기간 동네 의원과 한의원에서 받는 평균 진료비(수가)는 각각 10.8%, 12.5%씩 인상됐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받는 수가도 평균 6.7% 올랐다.
연도
뇌동맥류 결찰술 수술비
2018년
243만500원
2019년
243만2030원
2020년
242만20원
2021년
245만4960원
2022년
248만9890원
4년 간 인상폭
2.44%
뇌동맥류 결찰술은 환자의 두개골을 열고 뇌동맥 일부를 클립으로 조여 출혈을 막는 고난이도 수술이다. 최소 의사 4명, 간호사 3명이 투입돼야 하고, 경우에 따라 수술 시간이 12시간을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보험 제도를 운영 중인 일본이 뇌동맥류 결찰술에 한국의 4배가 넘는 1117만 원의 수가를 매기는 건 이 때문이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에 따르면 미국(484만 원)과 호주(537만 원)도 같은 수술에 대해 한국의 2배 수준의 수가를 매기고 있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만 낮은 게 아니다. 의료계에선 뇌동맥류 결찰술 수가가 국내에서 이뤄지는 다른 시술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고 토로한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조사에 따르면 뇌혈관 결찰술 수술비는 얼굴을 갸름하게 만드는 성형수술인 안면윤곽술(625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교적 간단한 코 성형수술(294만 원)보다도 낮다. 이 학회 회장인 임동준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비현실적인 수가가 개선되지 않는 탓에 이 수술을 배우려 드는 젊은 의사가 없다는 게 필수의료 부족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MRI 건보 줄이고, 필수의료 확충해야”
단순히 수술비 한두 항목을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전반적인 수가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필수의료 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다 보니 병원들이 돈벌이가 되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을 남발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MRI 촬영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본다. 2017년까지만 해도 80만 건 수준이던 건보 적용 MRI 촬영 건수는 2021년 196만 건으로 급증했다. 김 교수는 “병원 차원에서도 회계 자료를 정부 측에 투명하게 제공해 과소 책정된 수가는 높이고, MRI 등 과잉 책정된 수가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백 의원도 “문재인케어 이후 불필요한 건보 지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필수의료 분야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쇠퇴한 것처럼 보인다”며 “아산병원 간호사와 같은 안타까운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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