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서거 40주기 맞아 추서
전후 이재민들에 군수물자 지원
퇴역 뒤 한국 남아 전쟁고아 도와
전쟁 이재민을 돕고 한국 재건에 헌신한 리처드 위트컴 장군(1894∼1982)에게 국민훈장 1등급 무궁화장이 추서된다. 국가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계기로 위트컴 장군에 대한 훈장 추서안이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치러질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트컴 장군 자녀인 민태정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에게 훈장을 전수할 예정이다. 올해는 위트컴 장군의 서거 40주기로 고인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위트컴 장군은 1953년부터 2년간 부산 미 제2군수기지 사령관을 시작으로 전후 한국 재건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53년 11월 부산 역전(驛前) 대화재로 피란민들이 고통받을 때 상부의 승인 없이 군수창고를 열어 2만3000명분 식량과 의복 등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이 일로 미 의회 청문회까지 소환됐던 위트컴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외에도 이재민 주택과 도로 건설, 의료시설 건립 등을 지원하고 부산대를 비롯한 학교 설립을 돕기도 했다.
위트컴 장군은 1954년 퇴역한 뒤에도 한국에 남았다. 1960년 충남 천안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던 한묘숙 여사(1927∼2017)와 결혼했다. 이후 전쟁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에 여생을 바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1982년 7월 12일 심장마비로 작고한 위트컴 장군은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유엔기념공원 내 미국 묘역에서 영면했다. 위트컴 장군의 꿈은 1950년 혹한 속에서 12만 명의 중공군을 막아내다가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고인의 유지를 받들 듯 부인 한묘숙 여사는 1989년 북한의 초청장을 받은 뒤로 미군 유해 발굴 목적을 숨기고 북한을 23차례나 드나들기도 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대한민국 재건에 평생을 바치셨던 장군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22개 유엔참전국 195만 영웅에 대한 보답과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보훈처는 유엔참전용사의 아들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전참전협회장인 더크 제이코버스 로우(국민훈장 석류장),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 실종자위원회 고문 위원 케빈 콜린 베리만(대통령표창), 튀르키예 공군 중위 고 무자페르 에르된메즈(을지무공훈장)에게도 포상을 전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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