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거짓에 속는 마음의 작동 원리(1)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가짜뉴스가 나왔다가 사라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짜”라는 주장부터 “백신에 인간을 조종하는 칩 등 알 수 없는 물질이 들어갔다”는 음모론이 나왔고, 꽤 많은 이들이 현혹됐다. 의료 분야뿐 아니라 정치나 연예 등 가십거리가 많은 분야일수록 가짜뉴스가 넘친다. 가짜뉴스가 계속 생산되는 건 소비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면 한심한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듣는 헛소리는 “진짜?”라며 잠시나마 혹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멍청해서 속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짜에 속는 건 지능과는 큰 관계가 없다. 최근 또 다시 주목받는 사이비 교주에 속은 전문직 종사자도 많지 않은가. 그만큼 거짓에 현혹되는 것은 단순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왜 우리가 거짓 정보에 속게 되는가에 대한 원리를 밝힌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연구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사람은 진실할 것”이라는 믿음
우리에게는 상대방이 말하는 정보를 일단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듣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착해서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효율성 때문에 그렇다. 누군가로부터 처음 듣게 된 생각이나 정보를 일단 사실로 인정해야 대상의 실체를 이해하는 게 쉽다. 처음 접하는 정보 하나하나를 의심하며 검증하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피곤한 일이다.
이를 진실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30년 이상 대인 관계 속임수에 관해 연구한 티모시 르바인 미국 앨라배마대 버밍엄캠퍼스 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이 이론을 처음 학계에 내놨다. 그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4년 한국에서 해당 논문을 발표했다. 르바인 교수는 “이 이론이 작동하는 것은 매사에 의심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대부분의 순간에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동시에 이런 성향은 속임수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거짓이란 걸 이미 알고 있어도 속는다
한 번에 여러 정보가 쏟아지면 더 쉽게 속는다.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진실과 거짓을 가릴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짓말인 것을 미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의사결정을 하는데 인지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시간 제한 등 외부 압박이 주어지면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다니엘 길버트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당신이 읽은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라는 논문에서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거짓과 진실을 혼동하는지 알아봤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기 다른 강도 사건에 대한 수사 보고서 두 편을 보여주고 판사가 되어 각 사건의 형량을 결정해보라고 했다. A 강도는 낯선 사람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한 뒤 물건을 훔친 절도범이고, B 강도는 편의점을 털었다. 둘의 범행 수법은 달랐지만 사전 검토를 거쳐 법률적으로 유사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준으로 각색했다.
실험 시작 전 연구팀은 보고서 내용 중 검은색 글씨는 사실이고. 빨간색 글씨는 허위라는 것을 알려줬다. 빨간색 글씨로 한 보고서에는 “강도가 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악의적 묘사를 했고, 다른 보고서에는 “굶고 있는 자녀를 위해 절도를 했다”며 다소 호감을 주는 내용을 허위로 넣었다. 빨간색 글씨가 허위라고 미리 알려줬기 때문에 보고서를 읽는 데 집중했다면 두 사건의 범행 동기, 결과 등이 비슷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방해 효과 확인을 위해 실험 대조군에는 보고서를 읽는 동안 정신을 분산시키는 숫자 과제를 동시에 처리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집중해서 보고서를 읽은 실험 참가자들은 두 사건 강도에게 각각 6년 정도의 징역형을 비슷하게 선고했다. 하지만 집중에 방해받은 실험 참가자들은 악의적인 허위 내용이 기재된 보고서의 강도에게는 평균 11년 형을,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허위 내용이 담긴 보고서의 강도에게는 평균 6년 형을 선고했다. 연구팀은 “인지에 과부하가 걸리고 보고서를 읽는데 시간적 압박을 느끼면서 잘못된 정보를 믿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지보다 무서운 정보 편식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면서 계속 믿음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이 음모론과 관련된 콘텐츠만 찾아보며 더욱 굳건하게 진실로 믿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대부분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고 고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또 정보 편식은 반대 입장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굳이 음모론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편식하며 살고 있다. 실비아 웨스터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국방비 지출, 낙태 등 찬반이 나뉘는 8개의 기사를 보여주고 5분 동안 각 기사를 읽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기사를 읽는 데 평균 2분 24초를 썼지만, 맞지 않는 기사는 보는 데는 1분 55초를 썼다.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를 읽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들이는 것이다. 웹 사이트 등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사용자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이런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같은 것을 본 게 맞나? 해석은 각자 ‘알아서’
객관적인 사실을 해석할 때도 편향성이 드러난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동기화된 추론(논증)’이라고 한다. 지바 쿤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는 1990년 발표한 ‘동기화된 추론의 사례’ 논문에서 “동기화된 추론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사고 전략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즉 믿고 싶지 않은 근거는 무시하고, 믿고 싶은 근거만 채택해 결론에 유리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자료를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작 자신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고의로 남을 속이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일어난다.
한때 온라인상에 퍼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가짜뉴스를 살펴보자. 이를 믿는 이들은 그 근거로 빌 게이츠가 2015년 TED 강연에서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천만 명 이상이 죽게 된다면 전쟁이 아니라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했던 발언과 그의 저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제시한다. 빌 게이츠가 팬데믹 사태를 미리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지구 인구가 줄어야 하기 때문에 계획적으로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주장이다. 또 백신을 통해 MS의 마이크로 칩을 사람들 몸에 심으려 한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여기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은 그가 강연에서 했던 발언과 출판된 저서뿐이다. 하지만 음모론을 믿는 이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해석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10명 중 9명 수준인 국내 백신 접종 인구가 MS 칩에 조종 당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거짓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멋쩍은 우리의 마음은 또 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낸다. 이를 설명하는 인지부조화의 개념은 다음 기사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다음 주에 가짜뉴스에 속는 이유 2편이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통해 본 자기 합리화의 원리인 인지부조화 △모두가 ‘예스’할 때 ‘노’할 수 없는 사회적 동조의 욕구 △반복 노출의 폐해 등에 대해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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