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에 전해지는 탈모 치료법들[이상곤의 실록한의학]〈136〉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5일 23시 42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머리털이 노랗게 시들어갈 때는 곰의 기름을 발라주고 빠질 때는 곰의 골수로 기름을 내어 발라준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탈모 처방 중 일부다. 탈모 치료에 곰 기름을 쓴 기록은 로마 시대에도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연인 시저의 대머리에 곰 기름을 발라줬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 치료 효과를 차치하고 동서양이 같은 처방을 쓴 것이다.

모발(毛髮) 건강을 보는 한의학적 관점은 형태학적 관점에서 시작한다. 머리의 꼭대기 부분에 있는 가마는 태풍의 눈처럼 인체의 양기(陽氣)가 머리끝으로 빙글빙글 뻗쳐오르는 형상이고 머리털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인체의 혈(血)을 밀고 올라오는 바람의 모습이다. 모두 양기가 정점으로 모인 형국이니 이곳에 열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동의보감의 탈모 치료법도 여기에 착안했다. 머리로 모인 열을 다스리는 한편, 음정(陰精), 즉 음(陰)의 정기를 담은 약재를 발라 머릿결을 촉촉하게 영양을 보충하는 데 치중한다. 열을 꺾는 데는 측백나무 씨앗인 백자인(栢子仁)을 주로 쓰는데, 상승하는 머리로 올라온 양기를 꺾어 내리는 작용을 한다. 모든 나무는 햇볕을 향하는데 측백나무만은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서 자라기 때문이다.

음정을 공급하는 데는 하수오(何首烏)나 구기자, 호두, 무씨, 검은깨, 지황 등을 추천했다. 하수오는 그 이름의 기원을 두고 말이 많은데, 한자를 직역하면 ‘어찌해서 머리가 검어졌느냐’가 되겠지만 실제는 ‘하’씨 성에 ‘수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약재를 먹고 성 기능이 좋아져 아이를 가졌다는 게 그 기원이다.

사실 탈모에 대한 고민은 꼭 대머리 가족력을 가진 일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꼭 벗어지지 않아도 머리털이 가늘어지고 빠지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쩡했던 사람도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으면 머리로 가는 혈액 공급이 줄면서 탈모 증상이 생긴다. 한의학이 머리털을 혈(血)의 일부라고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튀김류나 삼겹살 같은 기름기 많은 음식들을 많이 먹어도 탈모가 일어난다. 두피에 가려움이 심해지고 비듬이 생기면서 머리털이 다발로 빠진다. 모낭에 기름이 끼여 머리털이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기에 절대 권력을 행사한 서태후도 탈모로 고민했는데 고지방 음식들이 그 원인이었다. 그녀는 탈모 치료의 한 방법으로 민두수를 적신 빗질을 애용했다고 한다. 민두수는 국화, 조협, 박하, 형개, 백지, 백강장, 곽향 등의 한약을 넣어 끓여서 식힌 뒤 용뇌를 넣어 만든 물로, 여기에 들어간 약재들은 모두 두피의 열을 내리고 서늘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 때문일까. 서태후는 민두수 빗질을 한 후 머리털이 윤기가 생기고 건강해졌다고 한다.

머리털을 빗는 것 자체도 아주 오래된 전통적 두피 관리법 중 하나다. 중국 동진 시대 도교의 수양법을 담은 경전인 ‘황정경’에는 “머리털을 많이 빗어야 거풍(祛風)하고 눈이 밝아지며 뇌신(腦身)이 튼튼해진다”고 쓰여 있다. 거풍이란 환기를 시키는 것이다. 머리털이 빽빽하게 뭉쳐 있으면 환기가 되지 않아 모근이 숨을 쉬기 힘들기 때문에 빗질이라는 자극을 통해 모낭을 열어 환기를 시켜 줘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머리털을 풍성하게 만들 가장 좋은 탈모 치료법은 평소의 꾸준한 건강관리이다. 탈모 치료에 특별한 비방(祕方)은 없다.

#탈모 치료법#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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