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66)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참 멋있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운동과 함께하는 삶. 100세 시대에 딱 맞는 삶이다. ‘운동은 의학(Exercise is medicine)’이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실천하고 있다. 중학교부터 시작한 농구를 지금도 하고 있고, 연세대 의대 시절부터 겨울엔 스키를 타고, 여름엔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인 2021년에는 자전거에 집중해 집(원주)이 있는 강원도는 물론 전국을 두 바퀴로 돌았다.
“코로나19가 퍼질 때 실내체육관이 폐쇄돼 농구를 할 수 없어 자전거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1995년부터 잠시 타다 잊고 있었는데 거리두기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이 위원장은 1994년 연세대 원주의대에 몸담게 된 이듬해부터 산악자전거(MTB)를 타기 시작했다. 집을 원주로 옮기면서 산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MTB로 산을 올랐다. 1998년 미국 교환교수로 가면서 자전거 탈 기회가 없었지만 코로나19가 자전거를 그의 삶 속으로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스포츠를 즐겼고, 귀국해서는 보직을 맡아 바쁘다 보니 농구와 스키 타기도 빠듯했다”고 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최고의료책임자였던 그는 올림픽 이후에도 같이 운동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하자며 2019년 결성된 ‘오싸디(올림픽 스키경기 의무지원팀 사이클 디비전)’에 합류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위원장은 포장도로와 비포장을 함께 탈 수 있는 그래블바이크(Gravel Bike)를 즐긴다. “MTB는 너무 위험해 다칠 수 있다. 포장도로를 달리다 가끔 산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차로는 못 가는 곳을 가서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강원도는 언덕과 산이 많아요. 서울 한강은 10km 달려도 상승고도가 100m도 안 되는데 강원도는 어딜 가든 10km면 100m가 넘어요. 50km 타면 500m가 되는 것이죠. 정말 자전거 타고도 살이 빠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했어요.”
이 위원장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세이던 2021년에 주 3회 자전거를 타 주당 평균 약 100km, 한해에 5000km를 달렸다. 그랬더니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그는 지금도 주 1~3회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30~60km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죽자 살자 타지는 않습니다. 전 풍광을 즐깁니다. 특히 아무나 가지 못하는 곳을 자전거를 타면 갈 수 있어요. 그런 멋진 곳에서 커피 한잔하는 맛,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죠.”
이 위원장의 ‘운동 본능’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서울 광운중 다닐 때 축구와 농구를 즐겼던 이 위원장은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좋았다”며 농구에 빠져들었다. ‘농구 명문’ 용산고, 연세대에 들어가선 자연스럽게 하는 농구와 보는 농구까지 즐겼다. 연세대 의대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고 병원장을 지낸 원주세브란스병원에도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농구를 했다.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영희에겐 농구 하는 시간”으로 못 박았다. 그는 “이런 확실한 목표 의식이 없다면 운동을 평생 즐기기 힘들다”고 했다.
“다들 ‘바쁠 텐데 어떻게 운동하느냐?’고 묻죠. 전 운동시간을 먼저 정해놓고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에게 저 시간은 언터처블이야 건들지 말자’는 분위기를 만들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운동을 오랫동안 즐길 수 없습니다.”
그는 ‘환갑잔치는 농구코트에서’란 버킷리스트를 2007년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원주 국민체육센터에서 제자들과 유니폼 다 맞춰 있고 환갑 기념 농구 경기를 했다. 내 유니폼에는 ‘60세부터 새로운 시작’이란 문구도 달았다. 제자들이 각자 유니폼에 글자를 새겨 ‘이영희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의미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고 했다.
대학 1학년인 1977년 겨울 강원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에서 처음 스키를 접했다. 우연한 기회에 체험했는데 눈과 스키가 너무 좋아서 겨울 방학 때마다 스키장에서 보냈다. 그는 “리프트도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산장을 운영하던 분이 방학 때마다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겨울 방학 땐 스키 타며 산장에서 일도 도와줬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겨울 시즌에 10회 이상 국내외 최상급 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있다. 1982년 경기 양수리에서 윈드서핑을 배웠고, 1990년대 초반 경남 거제 옥포대우병원, 부산 봉생병원 등 바다 근처 파견근무 때 무동력 수상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재활의학을 전공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스포츠계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그는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당시 재활의학이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제 전공이 척추 손상, 뇌 손상 재활의학 전문이다 보니 치료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그래서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휠체어 농구단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농구를 할 수 있는 휠체어 한 대가 500만 원이었습니다. 제 친구하고 강원도 장애인 스포츠 후원회를 만들어 돈을 모아 휠체어 5대를 사서 팀을 만들었죠.”
자연스럽게 장애인 스포츠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이 위원장은 1998년 나가노 겨울 패럴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 패럴림픽 때 한국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다. 2002년부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의무분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활약하며 유치와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탰다. 2013년부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일했다. 2019년부터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치료목적면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의사로서는 드물게 체육훈장(맹호장)을 받기도 했다.
“운동은 모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꼭 필요합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이미 증명됐습니다. 전 제자들에게 운동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뇌도 운동을 해야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해서 설명합니다. 병에다 콩 조 쌀을 넣기만 하면 바로 차죠? 그러면 흔들어줘야 많이 넣을 수 있죠.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를 비우려면 쌓인 것을 밑으로 내려줘야 합니다. 운동이 최고입니다. 농구 할 때 저 공의 속도가 얼마고 무게가 얼마인지 계산해서 받지 않죠. 감각적으로 받죠. 거의 동물과 같은 수준의 레벨로 움직입니다. 이럴 때 머릿속이 비워지게 됩니다. 운동한 뒤 공부가 더 잘 되는 이유입니다.”
이 위원장은 연세대 원주의대를 정년 퇴임한 뒤 디지털로 건강을 관리해주는 ㈜에스알파테라퓨틱스의 사업총괄자문을 해주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합니다. 매일 운동하는 습관이 중요한데 그것을 스마트폰 앱으로 관리해주는 시스템이죠. 당뇨를 예로 들면 치료의 3요소가 약을 복용하며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하는 것이죠. 약은 의사들이 처방해주면 환자들이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요. 그런데 식이요법하고 운동은 잘하기 힘들죠.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100세 시대’에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몇 살까지 살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농구를 하고 스키, 자전거를 타야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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