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정전 70년, 참전국대사 인터뷰]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해군 중사 외조부, 구축함 탑승 참전
함께 온 1만7000명중 2500명 생존… 韓의 역동적 민주사회 발전 반겨”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조부의 손녀로서 호주를 대표해 한국대사로 왔다. 제 외조부 같은 분들의 기여를 바탕으로 한국이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민주사회로 발전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53)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16일 서울 종로구 호주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조부가 6·25전쟁 당시 해군 중사로 참전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한국과 호주의 유대를 강조했다.
레이퍼 대사는 “외조부가 한국전 당시 해군 중사로 구축함에 탑승해 1952년 1∼8월 한국전에 참전했고, 1978년에 타계하셨다”며 “(당시 해군이) 한강에서 정찰 업무를 할 때 수심이 얕고 유속이 빨라 위험했고, 포탄 공격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고 어린 시절 외조부 등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했다.
호주는 6·25전쟁에 1만7000명 이상을 파병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한 국가였다. 전쟁 기간 호주 군인 340명이 전사하고, 12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0명이 전쟁포로가 됐다.
레이퍼 대사는 “한국전에 참전한 장병 1만7000명 중 2500명이 현재 생존해 있다”면서 “지난해 11월 한국에 방문했던 참전용사 한 분이 ‘70년 전 내가 싸웠던 나라에 와보고 싶어서 더 열심히 운동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호주군의 활약상이 가장 컸던 전투는 가평전투다. 중공군이 1951년 4월 남하했을 때 호주 육군 3대대가 영연방 제27여단의 일부로 참전해 가평 계곡을 따라 진격하던 중공군 1개 사단을 격퇴했다. 레이퍼 대사는 “호주군은 큰 열세에 놓였던 전투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막아냈고, (중공군의) 서울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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