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료난 부추기는 규제]
인건비 지출 규모 제한에 걸려
정부 지원 약속에도 사람 못뽑아
“의사 등 156명 더 늘려야 원활운영”
규제의 벽에 가로막힌 건 비단 지방 국립대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아 진료 분야에서 국내 독보적 1위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조차 ‘기타공공기관’으로 묶여 인력난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 병원 소아중환자실은 가장 중증도가 심한 어린이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리는 소아청소년과 ‘최후의 보루’다. 취재진이 방문한 5일 오후, 갓난아이부터 청소년까지 이곳에 입원한 아이들은 저마다 각종 의료 장비를 주렁주렁 몸에 단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파란색 처치복을 입은 간호사들은 각자 맡은 병상들 사이를 분주히 뛰어다니며 환아를 돌봤다. 수술을 마친 환아가 실려 오면 간호사 4, 5명이 즉시 달려가 환자의 상태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날도 심장 수술을 받은 3개월 영아 등 환아 8명이 중환자실에 새로 들어왔다.
24개 병상이 있는 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같은 시간대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11명(근무조). 간호사 1명이 환자를 2, 3명씩 돌봐야 한다. 이 병원 김민선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에크모(인공심폐장치)를 단 소아 환자는 1명당 간호사가 2명씩 붙는 게 의료 선진국의 ‘스탠더드’”라며 “우리는 인력이 부족해 간호사 1명이 최중증 환자를 2명씩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환자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314병상 규모인 이 병원에서 소아 감염내과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어린이병원장을 맡고 있는 최은화 교수를 포함해 단 2명뿐이다. 소아 혈액종양분과 전문의도 4명뿐이다. 최 원장은 “서울대 어린이병원과 규모가 비슷한 보스턴 어린이병원(미국 하버드대)의 경우 소아 감염내과, 혈액종양분과 전문의가 각각 우리 병원의 10배인 20명, 40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병원 측은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 156명을 추가로 채용해야 원활한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인력 부족을 인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 이 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의 고충을 듣고 “중증 소아 환자야말로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약자”라며 “소아의료체계 강화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이 병원을 비롯한 어린이병원 9곳에 대해 ‘적자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다가 적자가 발생하면 이를 추후에 정부 지원금 형식으로 보전해 주겠다는 것이다. 어린이병원들이 ‘돈이 없어서’ 필요한 처치를 하지 못하는 일만큼은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에도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아직 추가 인력을 본격적으로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병원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 탓에 올해 늘릴 수 있는 인건비 지출 규모가 전년 대비 1.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 문제’를 해결해 줬지만 규제가 다시 어린이병원들의 발목을 잡은 상황이다.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국립대병원장들은 “올해 추가 채용하는 인력에 대해서만이라도 총액 인건비 제한의 예외로 해 달라”는 의견을 4월 정부에 전달했다. 재정당국에서도 취지에는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구체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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