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로 전이된 4기 방광암, 곧 완치돼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4일 12시 00분


하유신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방광암 4기 심재흥 씨
초기에는 이틀간 혈뇨 증세
이어 급성신부전-심장쇼크
암 진단 후 항암치료만 40회 견뎌
하루 세끼 꼬박 먹고 2만 보씩 걸어
하 교수 “긍정 의지가 투병에 도움”
암만 제거, 방광 보존하는데 성공
진단 후 2년 4개월만에 암 소멸

하유신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왼쪽)가 방광암 완치를 앞둔 심재흥 씨와 함께 투병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 교수는 긍정 의지가 투병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고, 심 씨도 의사의 지시와 처방을 철저히 따랐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2017년 가을, 심재흥 씨(46)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혈뇨는 이틀 후 사라졌다. 인터넷에서 피로 때문에 혈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글을 봤다. 당시 심 씨는 영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몸도 힘들고 스트레스도 심했었다. 술과 담배도 많이 했다. 그래서 혈뇨가 나타났으려니 하고 넘어갔다.

해가 바뀌고 2018년 초, 이번엔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병원에 갔다. 하지만 기본적인 소변검사조차 할 수 없었다. 이뇨제를 처방받은 뒤 먹기 시작했다. 몸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2월에 그 병원에서 컴퓨터단층(CT) 검사를 했다. 의료진은 방광에 혹이 꽉 찼다며 암인 것 같다며 얼른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심 씨는 하유신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의 진료를 예약했다. 진료는 5월로 잡혔다.

● 폐로 전이된 4기 방광암 진단
그 후로도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진료 예정일 바로 전날에 일이 터졌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고, 의식도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소변을 오래 보지 못한 탓에 급성 신부전이 나타난 것.

심 씨는 응급처치 도중에 정신을 잃었다.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심 씨의 심장은 이후 8분 동안 뛰지 않았다.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하 교수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심 씨가 응급실로 즉각 오지 않았다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방광에 차 있는 암 덩어리였다. 암 덩어리가 방광을 꽉 채우는 바람에 소변이 나오는 길인 요관을 막아 급성 신부전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심장 쇼크가 일어난 것. 하 교수는 “이 씨처럼 방광암이 너무 커지면 소변량이 적어지면서 신부전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실 이 씨는 혈뇨가 나왔던 2017년부터 이미 방광암이 진행되고 있었다. 혈뇨가 방광암 초기 증세였던 것인데, 그 사실을 모른 채 1년 넘게 버틴 것이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이 씨가 안정을 되찾은 후 하 교수는 방광암의 전이 여부를 확인했다. 방광 4분의 1이 차 있을 정도로 암은 커져 있었다. 폐에서도 2~3㎝ 크기의 암 5개가 보였다. 림프절을 거쳐 폐로 전이된 방광암 4기였다.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평균 15% 정도에 불과하다.

● 집중 항암치료, 폐 전이된 암 사라져
4기 암일 때는 수술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항암치료로 암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종양내과 의료진이 먼저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의 전통적 항암제로 치료를 시작했다. 첫 4개월 동안 총 6회의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치료는 3주마다 진행됐다. 입원하지 않고 30분 정도 주사를 맞는 식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항암치료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심 씨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기는 했지만, 입맛이 떨어지고 딸꾹질이 나오는 것 말고는 크게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항암치료가 힘들 것 같다며 거부감을 가지는 환자들이 많은데, 최근 부작용을 최소화한 약제들이 많아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암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의료진은 항암제를 교체했다. 인체 면역 체계를 변화시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항암제였다. 최근 여러 암에서 꽤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 교수는 “비뇨기계 암 중에서 방광암이 특히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심 씨는 이때부터 약 2년 동안 34회에 걸쳐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폐로 전이됐던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더 주저할 게 없었다. 하 교수와 종양내과 의료진 등이 모여 논의한 끝에 수술을 결정했다. 다만 이 대목에서 고민이 생겼다. 표준치료 원칙을 따른다면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심 씨는 방광을 살려줄 것을 원했다.

● 방광 살리고 암 덩어리만 제거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는 게 방광암 수술의 표준치료법인 까닭이 있다. 암세포가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 장기까지 암이 침투했다면 그 장기들도 완전히 혹은 일부를 절제해야 한다.

심 씨의 경우 방광에 있는 암 덩어리가 너무 컸다. 이 때문에 방광을 완전히 들어내는 게 옳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 장기에 침투하지 않고 림프절을 따라 폐에만 전이된 것은 행운이었다. 폐에 있던 암은 사라졌으니 방광 안에 있는 암만 제거하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 게다가 심 씨는 인공 방광을 삽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 교수와 의료진이 다시 논의했다. 환자와도 충분히 상의했다. 최종적으로 방광을 살리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하 교수는 “생존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기에 환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수술법을 결정했다”고 했다.

2019년 2월, 하 교수가 수술을 집도했다. 내시경을 통해 미세한 암까지도 모두 제거했다. 방광을 살려야 하기에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수술 시간도 평소보다 4~5배 더 걸렸다. 수술하면서 다시 주변 장기를 살폈고, 암의 침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후 심 씨는 항암치료를 재개했다. 하 교수는 이와 함께 암의 재발과 전이 여부를 정기적으로 살폈다. 일단 수술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폐에서 완전관해(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가 확인됐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2020년 10월, 심 씨는 항암치료도 끝냈다. 그 후로는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경과만 살피고 있다. 수술 후 4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재발과 전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내년 2월이면 수술 후 5년이 지나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심재흥 씨의 방광암 투병 일지
2017년 초, 이틀 동안 혈뇨 발생
2018년 2월 방광암 의심 진단
5월 급성 신부전으로 응급실행
급성 심정지 발생
폐 전이 4기 방광암 진단
5~9월 전통적 항암치료 6회 시행
10월 면역항암제 치료 시작
2019년 2월 폐로 전이된 암 소멸
방광암 수술(방광 적출하지 않고 보존함).
면역항암제 치료 계속 진행.
2020년 9월 방광암 완전히 사라짐(완전관해).
면역 항암 치료 종료(2년 동안 34회 시행)
2023년 8월 수술 후 4년 6개월 경과. 재발-전이 없음.
2024년 2월, 수술 후 5년 경과, 완치 판정 가능.


● “긍정 의지가 암 투병에 큰 도움”
하 교수는 “심 씨의 ‘치료 순응도’에 놀랄 때가 많았다. 어떤 치료를 하든지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났고, 큰 부작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심 씨가 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심 씨가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런 자세가 투병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심 씨의 ‘긍정 의지’는 치료 과정에서 잘 나타났다. 그는 총 40회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든 싸움이었다. 그래도 잘 이겨냈다. 입맛이 없어 식사량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식단에는 반드시 고기를 넣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하면서 오전에 1만 보, 오후에 1만 보를 걸었다. 이때 시작한 운동이 습관이 돼 요즘에도 하루 1만 보는 무조건 걷는다.

씩씩하게 투병했지만 심 씨도 사실은 무서웠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암이 의심된다고 했을 때 머리가 멍해졌다. 나중에 4기 방광암이라고 했을 때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심 씨는 “다른 방법이 있겠나.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라며 웃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우울해지거나 불안해하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가끔은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마음을 바꿔 적극적으로 투병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암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또 있을까. 심 씨는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가 가족의 지원과 배려였다. 심 씨는 “가족이 많이 도와줬고, 덕분에 병과 잘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둘째, 의사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따랐다. 심 씨는 “주변에서 암에 좋은 음식이라고 추천해도 의사가 권하지 않으면 단 하나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하 교수는 “암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다가 신장이나 간 독성으로 병을 악화하는 사례가 있다.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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