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공 놓고 주방 칼 잡은 ‘갈색폭격기’ 신진식 “손님들이 진정한 전설”[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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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8월 13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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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폭격기’에서 ‘고깃집 주방장’으로 변신한 신진식 전 삼성화재 감독이 자신이 운영하는 고기집에서 고기 덩어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갈색폭격기’에서 ‘고깃집 주방장’으로 변신한 신진식 전 삼성화재 감독이 자신이 운영하는 고기집에서 고기 덩어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실업배구 시절이던 2000년대 초 삼성화재는 남자 배구는 물론 모든 구기 종목을 통틀어 최강의 팀이었다. 삼성화재는 2001년 1월 7일 대한항공전을 시작으로 2004년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현대캐피탈에 패하기 전까지 한국 종목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77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겨울 리그 9연패의 신화도 함께 일궜다.

당시 삼성화재는 팀 자체가 국가대표였다. 세터는 최태웅(현 현대캐피탈 감독), 센터는 김상우(현 삼성화재 감독)가 맡았다. 그리고 좌우 공격은 ‘좌진식-우세진’으로 불렸던 신진식과 김세진(현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본부장)이 책임졌다.

‘월드 스타’란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세진은 큰 키와 하얀 피부 덕에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김세진의 1년 후배인 신진식(48)은 호쾌한 플레이로 남성 팬들에게 더 어필했다. 공격수치고는 그리 크지 않은 188cm의 신장에도 탄력 넘치는 점프와 공이 찢어질 듯한 강 스파이크로 상대 코트를 맹폭격했다. 한 박자 빠른 공격과 탄탄한 수비 역시 강점이었다. 그런 플레이 스타일과 그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어우러져 그에겐 ‘갈색 폭격기’라는 멋진 별명이 생겼다.

‘갈색폭격기’로 상대방 코트를 폭격하던 시절의 신진식.      동아일보 DB
‘갈색폭격기’로 상대방 코트를 폭격하던 시절의 신진식. 동아일보 DB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배구를 시작한 이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를 거쳐 프로 감독에 이르기까지 평생 배구공과 함께했던 그는 요즘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현재 그의 직함은 ‘고깃집 주방장’이다. 그는 올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과 함께 경기 용인 기흥구에 ‘전설들의 집’이라는 이름의 고깃집의 문을 열었다. 소고기 특수 부위를 전문으로 하지만 돼지고기도 함께 판매한다.

함께 투자를 한 그도 엄연한 ‘사장님’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주방장’으로 소개한다. 그가 ‘사장님’ 대신 ‘주방장’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주방장을 고용하는 비용이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용도 아낄 겸, 기술도 배울 겸해서 그는 직접 칼을 잡았다.

평생 배구만 해 온 그가 덩어리 고기를 직접 해체하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처음엔 고깃집을 하는 지인의 가게에 가서 고기 손질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고기를 떼 오는 정육점에 직접 가서 고기를 손질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약 3개월의 수련 끝에 그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일을 해내는 주방장이 됐다. 그는 “소고기는 윗등심을 손질하면 살치살, 아랫등심을 잘 발라내면 새우살이 나온다. 예전보다는 칼질이 많이 빨라졌다. 지금은 주문이 밀려도 늦지 않게 손님상에 고기를 내놓을 정도가 됐다”며 웃었다.

신진식, 김세진, 최태용, 김상우 등이 한 팀을 이뤘던 삼성화재는 실업 배구 시절 77연승이라는 시록을 세웠다. 사진은 V리그 초창기 우승을 확정지은 삼성화재 선수들.  동아일보 DB
신진식, 김세진, 최태용, 김상우 등이 한 팀을 이뤘던 삼성화재는 실업 배구 시절 77연승이라는 시록을 세웠다. 사진은 V리그 초창기 우승을 확정지은 삼성화재 선수들. 동아일보 DB


주방장이라고 해서 주방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지만 틈틈이 홀에 나와 손님들을 맞이하고 고기를 나르기도 한다. 앞치마 차림에 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를 본 손님들 중에선 “정말 신진식 선수 맞느냐”고 물어보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업사원’까지 겸하는 그는 손님들이 권하는 소주를 한 잔씩 받아마시기도 한다.

그는 “어떤 날은 손님이 거의 없다가도, 또 어떤 날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며 “장사가 힘들면서도 새로운 걸 배워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기 맛이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단골손님들도 꽤 생겼다.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함께 얘기하며 서로를 알아 나가는 것도 재미있다”며 “자주 오시는 손님들 중에서는 주방 작업대까지 와 인사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장사를 시작한 후 그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가게는 오후 4시경 문을 연다. 그는 오후 2시 정도에는 가게에 나와 주방장으로서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한다. 손님 유무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영업은 밤 12시경에 끝난다. 집에 가서 씻고 키우는 고양이와 놀다가 오전 2시쯤 잠자리에 든다. 휴일인 일요일 하루만 빼고 그는 이렇게 주 6일을 일한다.

삼성화재 감독 시절이던 2018년 컵대회에서 우승한 후 헹가레를 받는 신진식 감독.                 동아일보 DB
삼성화재 감독 시절이던 2018년 컵대회에서 우승한 후 헹가레를 받는 신진식 감독. 동아일보 DB


다소 불규칙한 삶을 사는 그가 하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은 바로 골프다. 장사를 하루 쉬는 일요일에 그는 지인들과 골프를 즐긴다. 가끔 평일 아침 이른 골프를 친 뒤 바로 가게로 출근하기도 한다. 그는 “단골손님들 중에 친해진 분들과 가끔 라운드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2007년 말 은퇴 후 골프채를 처음 잡은 그는 2년간 호주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다. 그곳에서 골프가 단기간에 많이 늘었다. 그는 “여름엔 해가 길어 오후에 공부가 끝나도 골프를 칠 수 있었다. 호주에 있으면서 80대 타수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한 때 250m의 드라이버샷을 날렸던 신진식 전 감독은 최근엔 230m 안팎의 안정적인 티샷을 한다. 골프는 그가 요즘 하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신진식 전 감독 제공


이후 그는 배구계에서도 알아주는 골프 실력을 자랑했다. 핸디캡은 10 안팎으로 80대 초반을 기본으로 쳤다. 2019년 경기 여주 솔로모CC에서 열린 제7회 배구인 자선골프대회에서는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생애 베스트인 3언더파를 치며 메달리스트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20년에도 2언더파를 기록하며 또 한 번 언더파를 쳤다. 그는 “언더파를 친 바로 다음 주 라운드에서 89타를 쳤다. 그래서 아마추어인 것 같다”며 “지금은 그리 기복이 심하지 않게 80대 초중반을 오르 내린다”고 했다.

한때는 강스파이크를 때리듯 드라이버샷도 온 힘을 다해서 때려 250m 가량을 보냈다. 하지만 요즘엔 230m 안팎을 안정적으로 친다. 그는 “언젠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과 함께 친 적이 있는데 얼마나 멀리 치는지 정말 공이 안 보이더라”며 “그때부터 거리 욕심을 버리고 안정적으로 보내는 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신진식 전 감독(오른쪽)이 2019 동아스포츠대상 시장식에서 박철우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신진식 전 감독(오른쪽)이 2019 동아스포츠대상 시장식에서 박철우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현재 그는 장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당장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해설 제의도 받았지만 장사를 위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는 “홀에서 일하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면 되는데 주방장이다 보니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배구와의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많은 배구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여러 팀들이 그의 가게에서 단체 회식을 하기도 한다. 그 역시 언젠가는 다시 배구로 돌아갈 날을 꿈꾸고 있다.

그가 가장 해보고 싶은 건 대표팀 감독이다. 그는 “예전과 달리 남자 배구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인기도 많이 추락한 측면이 있다. 젊은 선수들을 잘 키워 예전의 한국 배구의 위상을 되찾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그가 다시 배구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먼저 지금 하는 장사가 잘되어야 한다. 그는 “장사가 잘되야 주방장을 고용하고 나도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다”며 “더 나이가 많이 들어서는 내가 하는 가게가 ‘배구인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와서 편하게 먹고 마시며 배구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궁금증. 그는 가게 이름을 왜 ‘전설들의 집’으로 지은 것일까. “원래는 나를 비롯해 가게를 차린 사람들이 전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보니 오시는 손님들이 한 분 한 분 모두 전설이시더라. 더 많은 전설님들께서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더 좋은 맛과 서비스로 보답드리겠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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