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여름철 콧물 때문에 고생했던 이유는[이상곤의 실록한의학]〈13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7일 23시 48분


가을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면서 콧물을 쏟아내고 연신 재채기를 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감기 또는 알레르기 비염으로 인한 증상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느 쪽인지 구분 짓기는 쉽지 않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들 증상을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콧물의 상태를 보는 것이다. 맑은 콧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코와 눈의 가려움이 동반된다면 알레르기 비염에 가깝다. 반면 맑은 콧물이 며칠 후 희거나 누런 콧물로 변한다면 계절성 비염이나 감기일 가능성이 크다. 찐득하고 희거나 누런 콧물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누런 콧물이 목으로 넘어와 만성 비염이나 부비동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조선시대 천하 지존인 임금도 콧물 때문에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승정원일기에는 정치적 기록뿐 아니라 임금의 콧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영조 22년 4월 기록을 보면 “임금이 병조판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콧물이 흘렀는데, 그 길이가 3자(90cm)에 이르러 모두 웃었다”고 적혀 있다. 누런 콧물은 항간의 아이들뿐 아니라 임금도 피해 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회충으로 복통을 겪는 와중에도 입으로 올라온 회충의 길이까지 정확하게 구분할 정도로 자신의 생리 현상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알레르기는 특정 물질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온도 변화에 민감해서 생긴 경우가 더 많다. 잘못된 생활 습관이 누적되면서 몸이 알레르기에 예민한 체질로 변한 것이다. 영조는 조선의 임금 중에서는 드물게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한 인물이었다. 영조 11년, 영조는 재채기 콧물이 빈발하자 재채기의 원인에 대해 신하들에게 물었는데, 그때 신하들의 입에서 나온 답변이 바로 “온도 차이(한열호박)”였다.

현대의학으로 설명해 보면 재채기와 콧물은 몸에 해로운 이물질을 거르고 씻어 몸 밖으로 내보내려는 신체의 방어기제다. 코의 혈관은 급탕 보일러처럼 외부 온도를 0.25초 만에 체온인 36.5도로 데워 폐와 심장으로 보내야 하는데, 온도 차가 너무 심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면 우리 몸은 온도 차를 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밀어내기 위해 콧물이나 재채기라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영조는 특히 여름철 복통과 설사를 자주 앓을 만큼 찬 음료를 남용했던 임금이었다. 더운 여름에 찬 음식을 많이 먹자 몸 안팎의 온도 차가 커지면서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다.

냉장고와 에어컨의 등장으로 ‘냉기의 바다’에 사는 현대인에게 알레르기 질환이 크게 늘어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의학은 계절에 순응할 것을 금과옥조처럼 권한다. 우리 몸은 마치 태양광 집열판처럼 한여름의 열기를 견디고 축적함으로써 가을철의 냉기를 조절하는 힘을 얻는다. 인도인은 체온보다 낮은 음식을 먹지 않는 평범한 비법으로 건강을 지킨다. 사계절 내내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등산으로 재채기와 콧물 증상을 극복한 걸 보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알레르기 치료에 큰 도움이 됨이 분명해 보인다.

알레르기 비염의 증상 완화에는 생강과 족두리풀, 대추를 끓여서 차처럼 마시면 큰 도움이 된다. 족두리풀은 세신으로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빠지지 않는 약물이다. 생강 뿌리를 닮아서 속명이 아사룸(Asarum)이다. 막힌 코를 뚫어주고 콧물을 진정하는 데 효험이 크다.

#영조#여름철 콧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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