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자연으로 떠날 때 바다와 산 중에 딱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취향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바람과 파도가 춤추는 탁 트인 바다가 안겨주는 느낌과 고요하고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찬 산이 선사하는 기분은 분명 다르다.
사실 어떤 자연이든지 일단 집을 떠나기만 하면 힐링 효과는 따라온다. 앞서 기사(연휴 내내 스마트폰만 만지작? 자연 속으로 ‘녹색 갈증’ 풀러 떠나세요)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할 뿐 아니라 불안이나 우울, 폭력성 등 부정적 정서를 낮춰준다.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힐링 효과를 선사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람들이 가장 행복감 느끼는 자연환경은 어디?
도심을 조금이라도 벗어나 탁 트인 자연환경을 봤을 때 정서가 환기되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어떤 자연환경을 만나느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기분의 정도가 다르다.
영국 서식스대 조지 맥케론 박사 연구팀은 사람들이 어떤 자연환경에서 더 행복감을 느끼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용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앱 알람이 울릴 때마다 GPS 위치 정보와 함께 구체적 장소, 기분, 날씨, 활동 등을 입력했다. 6개월간 진행된 연구에 총 2만2947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주말이나 휴가 등 여가 시간에 방문한 장소를 분석해보니 도심, 바다, 숲, 산, 강이나 호수, 초원, 논밭 등으로 다양했다. 사람들은 이 장소들 가운데 어디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가장 높은 행복 수치를 보고한 장소는 바로 바다였다. 그다음으로 행복 수치가 높았던 곳은 산, 숲, 초원, 강 등의 순서인데, 사실 이 네 곳의 점수 차는 크지 않고 거의 비슷했다. 다만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 유독 노년층은 바다보다 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보고했다. 도심은 어느 장소에 있을 때와 비교해도 가장 낮은 행복 수치를 보였다.
‘물멍’에 빠질 때 깊은 이완 경험
바다를 방문한 사람들이 특별히 더 행복하다고 느낀 이유는 뭘까. 안타깝게도 아직 사람들이 바다를 더 좋아하는 메커니즘을 완벽히 입증한 연구 결과는 없다. 다만 유력한 실마리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는 ‘물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독일 본대학 위생·공중보건 연구소 소속 연구팀이 공원이나 숲과 같은 초록색 자연이나, 강이나 바다 같은 푸른색 자연환경을 찾은 113명을 현장에서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다.
이 연구에 따르면 ‘물멍’을 때리는 동안 몸과 마음이 극도의 이완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물의 빛깔, 청각을 자극하는 파도 소리, 물의 움직임에 따라 생성되는 흰색 거품, 물가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붉게 내려앉는 노을 등 변화무쌍한 물가는 숲이나 산에 비해 끊임없는 자극을 선사한다.
아무래도 자연에서 물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시각, 청각, 후각 등을 다양하게 자극해 지루하지 않고 오래도록 멍때리며 쉴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오감을 자연에 맡기고 앉아서 멍때리는 동안 몸과 마음이 깊게 이완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탁 트인 강이나 호수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가깝게는 공원의 분수, 인공폭포 등 움직이는 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요함·고립감 목적이라면 산이 적합
반면, 숲이나 산은 바다와는 다른 종류의 힐링 효과를 준다. 나무가 많은 곳은 고요함을 선물하고, 골치 아픈 것으로부터 멀어진 것 같은 좋은 의미의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관찰하는 탁트인 전망도 정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조용한 환경에서 새 소리를 듣고, 꽃이나 나무를 관찰하며 차분하게 자연을 음미할 수도 있다. 꽃, 나무, 새, 곤충 등 바닷가보다 관찰할 수 있는 동식물이 더 많은 것도 장점이다. 다만 연구팀은 산이나 숲은 물가에 비해 시시각각 변하는 정도가 작고, 파도 소리 같은 지속적인 청각 자극이 없기에 ‘나무 멍’이나 ‘숲 멍’과 같은 이완 행동은 덜하다고 봤다.
만약 두 효과를 모두 누리고 싶다면 ‘물멍’이 가능한 녹지로 가면 된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풀이나 나무만 있는 공원 풍경보단 기왕이면 연못이나 분수 등 물이 함께 있는 풍경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연 산책에 필요한 하루 최소 시간은?
일상에서는 바다나 산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주변 공원이나 천변 등을 잠시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휴식 효과가 있다. 그런데 바쁜 현대인들이 매일 일정 시간 이상 자연에서 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루 몇 분 정도 산책하면 가장 효율적일까.
일반적으로 하루 최소 20분은 투자하는 게 좋다. 마리 캐럴 헌터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도시에서 녹지공간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타액을 채취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분석해 얻은 결과다.
연구팀은 8주 동안 실험 참가자 36명을 대상으로 자연 산책 전후 채취한 타액을 분석했다. 그 결과 코르티솔 수치가 가장 가파르게 떨어지는 시간은 산책을 시작하고 나서 20~30분 사이였다. 이때 코르티솔 수치는 평균 28.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후에도 수치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감소 속도가 더뎠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일주일에 최소 2시간은 자연에서 보낼 것을 권한다. 2019년 네이처지에 실린 영국 엑서터대 매튜 화이트 박사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간 자연에서 120분 정도를 보낸 사람들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가장 건강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그런데 120분 이하로 시간을 보낸 이들은 자연에서 아예 시간을 보내지 않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삶의 만족도를 보였다. 이와 반대로 200분 이상을 자연에서 보내면, 자연이 미치는 긍정적 연관성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자연과 ‘연결’되면 외로움도 줄어든다
자연은 외로움도 완화해준다.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적어도,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면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화이트 박사가 진행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고립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지내면 외로움을 덜 느끼고,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과는 단절됐을지 몰라도 자연과는 연결됐기에 덜 외롭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다른 대상과 연결됐다고 여긴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아마도 인간이 자연을 살아 있는 대상으로 여기며 교감한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휴일에 별다른 약속이 없고, 마땅히 함께 보낼 사람이 없어도 외로워 말자. 그럴 때마다 우리에겐 언제나 품을 내어주는 자연이 기다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밖으로 나가보면 어떨까. 자연은 영원한 우리의 친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