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누우면 ‘말똥말똥’… 수면제보다 좋은 불면증 치료법[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1일 14시 00분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살면서 일시적으로 누구나 불면 증상을 겪을 수 있지만, 잘못된 생활 습관과 잠에 대한 강박적 사고들이 만성 불면증으로 악화하는 걸 부추기기도 한다. 수면제 없이도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 게티이미지뱅크
평소에 잘 자던 사람도 스트레스받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잠을 뒤척이곤 한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이 안 오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가 된다. 언제 잠들지 모르는 초조함, 내일 하루를 망쳤다는 절망감, 할 일을 제대로 못 할 것이라는 불안감, 캄캄한 밤에 홀로 남겨진 고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잠을 더욱 방해한다.

‘고통의 밤’을 보내는 국내 불면증 인구는 약 70만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는 2021년 기준 68만4560명이다. 4년 전인 2017년(56만855명)과 비교해 18%나 증가했다. 병원 진료를 받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면증은 △잠들기 어렵고 △도중에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우며 △잠 때문에 우울·과민·짜증을 호소하고 △잠이 모자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으며 △이런 증상이 일주일에 3일 이상, 3개월간 지속될 때 진단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불면증이 삶에서 통제력을 잃었다는 불안감과 우울감 등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잠에 집착하게 되고, ‘자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다.

불면증 치료에 흔히들 수면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수면제나 멜라토닌 성분 등 약물 사용은 의존성이 생길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보다는 잠에 대한 강박적이고 왜곡된 생각(인지)을 합리적으로 바꾸고, 잘못된 습관(행동)을 바로잡는 인지행동치료가 비약물적 치료로 널리 쓰인다. 약의 도움 없이 ‘꿀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자. 평소 수면에 별문제 없더라도 지금보다 더 푹 잘 수 있다.

억지로 자려다 ‘침대=고통’ 잘못 학습돼
잠자리에 들어도 30분 이상 잠이 안 올 땐 눈감고 억지로 누워 고통을 견디지 말고 과감하게 침대 밖으로 나와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잘 자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자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다. 이게 불면증 치료에 가장 잘못된 접근이다. 특히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침대에 오랜 시간 누워있는 습관은 불면증을 악화시킨다.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누워있으면 우리 마음속에 ‘침대=각성’ 또는 ‘침대=고통’이라는 강력한 공식이 생겨버리게 된다. 편안하고 안락해야 할 공간이 부정적으로 잘못 각인되는 셈이다.

잠이 안 올 땐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과감히 침대 밖으로 나와야 한다. 누운 지 20~30분이 지나도 잠이 안 온다면 침대 밖에서 독서나 명상 등 다른 이완 행동을 하는 게 낫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수면의학센터장)는 “불면증 환자들이 거실 소파에선 TV를 보며 졸다가도 침대에 눕기만 하면 잠이 깨는 이유도 ‘침대=각성’ 공식이 생긴 탓”이라고 설명했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 TV,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좋지 않다. 특히 흥미진진하거나 불쾌한 콘텐츠를 보면 정서적으로 흥분되므로 ‘침대=각성’ 공식을 강화할 수 있다. 침대에서 전화 통화를 하거나, 업무 자료를 보거나, 배우자와 정서적 소모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수면에 좋지 않다. 시간을 계속 확인하면 초조해질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알람을 맞춘 이후 서랍에 넣어 두는 것을 추천한다.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습관들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자려고 노력한다.
밤에 잘 자지 못한 날은 낮잠을 오래 잔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자기 전에 술이나 카페인(커피, 콜라, 초콜릿)을 섭취한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잠에도 준비 동작이 필요하다
잠자기 직전까지 다른 활동을 활발하게 하다가 잠자리에 눕는다고 갑자기 잠들긴 어렵다. 자는 시간 직전까지 업무 자료를 보거나, 공부하거나, 머리를 쓰는 일을 하면 뇌를 각성시키기 때문에 바로 잠들기 어려워진다. 뇌가 깨어 있으면 정신 활동이 활발해져 긴장도가 높게 유지되고, 복잡한 생각이 떠올라 몸과 마음이 이완되기 어렵다. 따라서 잠들기 1, 2시간 전에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이완시켜줘야 한다. 단, 자기 직전에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 오히려 몸에 체온이 올라 수면에 방해가 된다.

화면 불빛이 시각을 자극하는 스마트폰은 잠자리에서 가급적 멀리하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시청각 자극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게 좋다. 특히 불빛을 보면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 분비가 저하돼 잠드는 시간이 지연된다. 실제로 불면증이 ‘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세상이 밤에도 낮처럼 훤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밤은 밤답게 고요한 휴식 시간으로 보내야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간혹 빗소리나 파도 소리 등 백색소음 음향을 틀어 놓고 잠을 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잠들고 난 뒤 되려 소음이 돼 깊은 잠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일정 시간 이후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정할 것을 권한다.

졸리기 전엔 침대에 눕지 않기
졸리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침대에 눕지 않도록 하는 ‘수면 제한법’도 효과적이다. 상당히 졸릴 때까지 기다려서 일부러 약간의 수면 부족을 유발하는 원리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잠자리에 눕는 시간, 실제 잠드는 시간, 기상 시간 등 자신의 수면 패턴을 파악해야 한다. 만약 매일 오후 10시부터 침대에 눕지만, 실제 잠드는 시간은 12시라면, 10시가 되더라도 잠이 오기 전에는 침대에 눕지 않도록 습관을 고쳐야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면, 우리 몸에서는 피곤해서 자고 싶어지는 ‘수면 압력(sleep pressure)’이 높아진다. 수면 압력이 높아지면 누운 이후 잠드는 시간이 단축된다. 이 방법은 언제 잠들었든 기상 시간을 주중, 주말 모두 일정하게 유지해야 효과가 있다.

잠자리에 10시간 이상 오래 누워 있어도 실제 수면 시간이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면 ‘수면 효율’은 뚝 떨어진다. 진짜로 졸릴 때만 침대에 누워 바로 잠들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하면 깬 채로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비효율적이었던 수면 패턴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다. ‘수면 효율’은 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 대비 실제 수면 시간의 비율로 따진다. 침대에서 10시간을 보내지만, 실제 수면 시간은 8시간이라면, 수면 효율은 80%다. 잠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수면 효율이 85% 이상이다.

불면증 환자들은 잠이 안 올까 봐 불안해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자보기 위해 침대에서 깬 채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면 수면 효율이 낮아진다. 잠자는 시간 외에 침대에 머무는 시간은 최대 30분 미만으로 유지하는 게 이상적이다. 이 교수는 “불면증 환자들은 객관적 수면 시간이 짧다기 보단 주관적으로 ‘못 잔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수면 제한 방법이 강력한 수면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불면 증상이 심각해 실제 수면 시간이 매우 적은 경우라면 최소 6시간 정도는 침대에 누워있어도 괜찮다. 이때는 ‘자야만 한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휴식’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면증으로 잠이 상당히 부족한 경우에는 침대에서 쉬면서 잠들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때는 자려고 뒤척이며 노력하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잘 못 잤으니 망했다” 파국적 생각 버려야
잠에 대해 왜곡되고 강박적인 생각은 불면증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잠을 못 잤으니 “내일 하루를 망쳤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불면증 환자들은 잠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높은데, 잘 못 잤다고 당장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로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전부 잠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일찍 못 잤으니 내일 회사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할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에 시달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전날 잘 자지 못했다고 다음날 항상 일을 망쳐왔던 것은 아니며, 우려한 만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날은 손에 꼽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잠을 못 잔 날에도 큰 문제 없이 일을 수행해 왔다”는 합리적 생각으로 바꿔볼 수 있다.

수면에 악영향을 미치는 강박적 사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다음 날 제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최소 8시간은 자야 한다”
“낮에 피곤한 이유는 모두 불면증 때문이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잔다”
“푹 자면 다음 날 아침에 눈 떴을 때 반드시 개운할 것이다”
“밤에 자다가 깨면 잠을 깊이 자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불면증 환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을 자고 있을 수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장애센터에서 1970년대에 실시한 고전적 실험이 있는데, 불면증 환자 122명에게 시계를 보여주지 않고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과 전체 수면 시간을 각각 예측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이들은 뇌파 상으로 실제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26분에 불과했지만, 주관적으로는 평균 62분이 걸린 것 같다고 답했다. 또 이들이 예측한 수면 시간은 5시간 30분 정도였으나, 실제로는 6시간 15분을 잔 것으로 나타났다.

밤에 잘 잤더라도 식곤증이나 지루함 등 다양한 이유로 누구나 낮에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잠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집착하는 이들은 밤에 잘 잤다면 낮에 절대 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등 완벽한 기준을 설정해 두곤 한다. 사진은 부산의 한 서원에서 진행된 전통문화 체험 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졸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또 불면증 환자들은 △최소 8시간은 자야 한다 △낮에 피곤한 건 전부 잠이 모자라서다 △밤에 자주 깨면 잠을 깊이 자지 못한 것이다 △잘 잤다면 아침에 일어날 때 반드시 개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적정 수면 시간은 일 평균 6~8시간 정도로 전부 다르기도 하거니와,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성인 110만 명을 6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7시간 자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 또 아무리 밤에 잘 자더라도 지루함이나 식곤증 등 다양한 이유로 낮에 누구나 피곤함을 겪는다. 정상인 기준으로 평균 6~12회 정도 자다가 깨기도 하며, 수면에는 관성이 있어 아무리 푹 자고 일어나더라도 계속 자고 싶고 멍한 상태가 한동안 이어진다.

낮잠·카페인 금지…햇빛 아래 산책하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낮에 잘 깨어 있어야 밤에 잘 잘 수 있다. 불면증 때문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해오던 운동을 그만두거나, 낮잠을 자면 만성 불면증으로 가기 쉽다. 특히 햇볕을 쬐며 산책하거나, 땀 흘리고 운동하는 것은 숙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기 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을 깨워 숙면을 방해하는 꼴이다. 불면 증상과 반대로 “나는 아무 데서나 머리만 대면 잘 잔다”는 경우 역시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항상 수면 부족 상태로 지내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충분하게 움직여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잘 잘 수 있는 첫 번째 걸음이다. 영광군 제공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충분하게 움직여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잘 잘 수 있는 첫 번째 걸음이다. 영광군 제공
또 가급적 오후 2시 이후에는 커피를 삼가는 것이 좋다. 섭취 후 5시간 후에야 체내 카페인 농도가 절반으로 감소하는데, 늦게 커피를 마실수록 잠을 방해한다. 술은 졸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도중에 잘 깨게 만들어 숙면을 방해하므로 자기 전 음주는 좋지 않다. 서 교수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엄격히 지키다가 느슨해지면 증상이 재발할 수도 있다”며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치 다이어트와 같이 언제든 다시 관리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고 싶다면, 대학병원 등의 수면 전문 클리닉이나 인지행동치료를 기반으로 불면증 개선을 돕는 임상·상담 센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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