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불면증 환자 70만 시대… 억지로 자려는 ‘강박’이 불면증 키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1일 01시 40분


불면증 환자 4년 만에 18%나 증가… 일상생활 통제력 잃어 불안·우울
침대는 ‘잠만 자는 공간’ 인식 중요… 잠 안 오면 잠자리에서 벗어나야
취침 전 스마트폰 등 ‘딴짓’ 금물… “못 자도 큰일 안 난다” 생각해야

Chat GPT DALL-E를 사용해 만든 이미지입니다.
Chat GPT DALL-E를 사용해 만든 이미지입니다.
주부 김미연 씨(56)는 6년째 불면증을 겪고 있다. 처음엔 갱년기 증상이라 일시적이려니 하며 참고 지냈다. 그런데 잠들려고 뒤척일수록 ‘오늘도 못 자면 어쩌지?’ 하는 긴장감이 올라왔다. 내일 해야 할 일과 함께 또 하루를 망칠 거라는 불안도 파도처럼 거세졌다. 가족들 모두 자는 시간에 혼자만 깨어 있다는 고독함도 힘겨웠다. 남들에겐 휴식 시간인 밤이 그에겐 고통의 시간이 돼버렸다.

현재 국내 불면증 환자는 약 70만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불면증 환자는 2021년 기준 68만4560명이다. 2017년 56만855명에서 4년 만에 12만 명 훌쩍 넘게 증가했다. 불면증은 △잠들기 어렵고 △도중에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우며 △잠 때문에 우울·과민·짜증을 호소하고 △잠이 모자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으며 △이런 증상이 일주일에 3일 이상, 3개월간 지속될 때 진단할 수 있다. 병원 진료를 받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불면증 환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불면증이 삶에서 통제력을 잃었다는 불안감과 우울감 등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잠에 집착하게 되고, ‘자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다. 불면증 치료에 흔히들 수면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수면제나 멜라토닌 성분 등 약물 사용은 의존성이 생길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보다는 잠에 대한 강박적이고 왜곡된 생각(인지)을 합리적으로 바꾸고, 잘못된 습관(행동)을 바로잡는 인지행동치료가 비약물적 치료로 널리 쓰인다. 약의 도움 없이 ‘꿀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자. 평소 수면에 별문제 없더라도 지금보다 더 푹 잘 수 있다.

●‘침대=불면의 고통’ 잘못된 공식 바로잡아야
잘 자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자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다. 이게 불면증 치료에 가장 잘못된 접근이다. 특히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침대에 오랜 시간 누워 있는 습관은 불면증을 악화시킨다.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누워 있으면 우리 마음속에 ‘침대=각성’ 또는 ‘침대=고통’이라는 강력한 공식이 생겨버리게 된다. 편안하고 안락해야 할 공간이 부정적으로 잘못 각인되는 셈이다.

잠이 안 올 땐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과감히 침대 밖으로 나와야 한다. 누운 지 20∼30분이 지나도 잠이 안 온다면 침대 밖에서 독서나 명상 등 다른 이완 행동을 하는 게 낫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수면의학센터장)는 “불면증 환자들이 거실 소파에선 TV를 보며 졸다가도 침대에 눕기만 하면 잠이 깨는 이유도 ‘침대=각성’ 공식이 생긴 탓”이라고 설명했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 TV,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좋지 않다. 특히 흥미진진하거나 불쾌한 콘텐츠를 보면 정서적으로 흥분되므로 ‘침대=각성’ 공식을 강화할 수 있다. 침대에서 전화 통화를 하거나, 업무 자료를 보거나, 배우자와 정서적 소모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수면에 좋지 않다. 시간을 계속 확인하면 초조해질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알람을 맞춘 이후 서랍에 넣어 두는 것을 추천한다.

● 졸리기 전까진 침대와 멀어지기
졸리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침대에 눕지 않도록 하는 ‘수면 제한법’도 효과적이다. 상당히 졸릴 때까지 기다려서 일부러 약간의 수면 부족을 유발하는 원리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잠자리에 눕는 시간, 실제 잠드는 시간, 기상 시간 등 자신의 수면 패턴을 파악해야 한다. 만약 매일 오후 10시부터 침대에 눕지만, 실제 잠드는 시간은 밤 12시라면 10시가 되더라도 잠이 오기 전에는 침대에 눕지 않도록 습관을 고쳐야 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면 우리 몸에서는 피곤해서 자고 싶어지는 ‘수면 압력(sleep pressure)’이 높아진다. 수면 압력이 높아지면 누운 이후 잠드는 시간이 단축된다. 이 방법은 언제 잠들었든 기상 시간을 주중, 주말 모두 일정하게 유지해야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하면 깬 채로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비효율적이었던 수면 패턴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다. ‘수면 효율’은 잠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 대비 실제 수면 시간의 비율로 따진다. 침대에서 10시간을 보내지만 실제 수면 시간은 8시간이라면 수면 효율은 80%다. 잠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수면 효율이 85% 이상이다. 불면증 환자들은 잠이 안 올까 봐 불안해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자보기 위해 침대에서 깬 채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면 수면 효율이 낮아진다. 잠자는 시간 외에 침대에 머무는 시간은 최대 30분 미만으로 유지하는 게 이상적이다. 이 교수는 “불면증 환자들은 객관적 수면 시간이 짧다기보단 주관적으로 ‘못 잔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수면 제한 방법이 강력한 수면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불면 증상이 심각해 실제 수면 시간이 매우 적은 경우라면 최소 6시간 정도는 침대에 누워 있어도 괜찮다. 이때는 ‘자야만 한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휴식’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면증으로 잠이 상당히 부족한 경우에는 침대에서 쉬면서 잠들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때는 자려고 뒤척이며 노력하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잘 못 잤으니 망했다” 왜곡된 생각이 악영향
잠에 대해 왜곡되고 강박적인 생각은 불면증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잠을 못 잤으니 “내일 하루를 망쳤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불면증 환자들은 잠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높은데, 잘 못 잤다고 당장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로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전부 잠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일찍 못 잤으니 내일 회사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할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에 시달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전날 잘 자지 못했다고 다음 날 항상 일을 망쳐왔던 것은 아니며, 우려한 만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날은 손에 꼽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잠을 못 잔 날에도 큰 문제 없이 일을 수행해 왔다”는 합리적 생각으로 바꿔볼 수 있다.

또 불면증 환자들은 △최소 8시간은 자야 한다 △낮에 피곤한 건 전부 잠이 모자라서다 △밤에 자주 깨면 잠을 깊이 자지 못한 것이다 △잘 잤다면 아침에 일어날 때 반드시 개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적정 수면 시간은 일평균 6∼8시간 정도로 전부 다르며, 지루함이나 식곤증 등 다양한 이유로 낮에 누구나 피곤함을 겪는다. 또 정상인 기준으로 평균 6∼12회 정도 자다가 깨기도 하며, 수면에는 관성이 있어 아무리 푹 자고 일어나더라도 계속 자고 싶고 멍한 상태가 한동안 이어진다.

● 낮잠·카페인 금지… 규칙적 운동은 기본
당연한 이야기지만 낮에 잘 깨어 있어야 밤에 잘 잘 수 있다. 불면증 때문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해오던 운동을 그만두거나, 낮잠을 자면 만성 불면증으로 가기 쉽다. 특히 햇볕을 쬐며 산책하거나, 땀 흘리고 운동하는 것은 숙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기 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을 깨워 숙면을 방해하는 꼴이다. 불면 증상과 반대로 “나는 아무 데서나 머리만 대면 잘 잔다”는 경우 역시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항상 수면 부족 상태로 지내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또 가급적 오후 2시 이후에는 커피를 삼가는 것이 좋다. 섭취 뒤 5시간 후에야 체내 카페인 농도가 절반으로 감소하는데, 늦게 커피를 마실수록 잠을 방해한다. 술은 졸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도중에 잘 깨게 만들어 숙면을 방해하므로 자기 전 음주는 좋지 않다. 서 교수는 “불면증 치료를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엄격히 지키다가 느슨해지면 증상이 재발할 수도 있다”며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치 다이어트와 같이 언제든 다시 관리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보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고 싶다면 대학병원 등의 수면 전문 클리닉이나 인지행동치료를 기반으로 불면증 개선을 돕는 임상·상담 센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습관들
-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자려고 노력한다.
- 밤에 잘 자지 못한 날은 낮잠을 오래 잔다.
-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 자기 전에 술이나 카페인(커피, 콜라, 초콜릿)을 섭취한다.
-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수면에 악영향을 미치는 강박적 사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다음 날 제대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최소 8시간은 자야 한다”
“낮에 피곤한 이유는 모두 불면증 때문이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잔다”
“푹 자면 다음 날 아침에 눈 떴을 때 반드시 개운할 것이다”
“밤에 자다가 깨면 잠을 깊이 자지 못한 것이다”
#불면증#일상생활 통제력#잠만 자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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