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사람들의 시선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요즘 같으면 기침이 그렇다. 코로나19 이후 언제부터인가 기침을 하면 마치 병균의 숙주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기침이나 재채기는 세균, 바이러스 등 병원체가 몸 안 호흡기도로 들어왔을 때 이를 밖으로 배출하려는 우리 몸의 반사적(불수의적) 방어기제다. 그런데 몸에 나쁜 이물질이 들어온 게 아닌데도 재채기나 기침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잠깐의 아침 찬 바람에도, 약간 매운 음식에도, 스치듯 지나간 담배 연기 등 일상적 상황에서도 발작적 기침을 일으킨다면 이는 기관지의 점막이 필요 이상으로 과민해진 탓이다. 코와 기관지의 점막은 기름기 있는 물인 점액으로 덮여 있는데, 이들은 바이러스나 세균 등 아주 유해한 병원체가 아닌 이상 웬만한 이물질은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포착해서 중화시키거나 삼켜서 제거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독감 등 심한 상기도 감염 증상을 앓으면 이들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예민해지는데, 사소한 외부적 변화에 대해서도 민감해져 기침을 유발하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기침을 가래가 많은 습성기침과 목이 건조해지면서 간질거리는 발작적 건성기침으로 나누는데, 건성기침의 치료에는 한방의 장점이 크다. 건조해진 점막에 윤기 있는 점액을 더해 촉촉하게 하는 자윤(滋潤) 처방이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실제 건성기침으로 고생을 했던 숙종과 영조 등 조선의 임금들도 한방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당시 기록을 보면 본디 몸에 열이 많거나 화병(火病)을 앓았던 이들 두 임금은 열받는 일이 생길 때마다 심한 마른기침으로 고생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몸 전체에 열이 나면서 화가 치밀어 올라 상기도의 점막이 건조해지고 민감해진 탓이다. 숙종 30년의 기록에는 “이번 겨울부터는 화기가 오르면 코가 타고 목이 건조하여 기침이 문득 나오니 그 조짐이 좋지 못하다”고 했고, 43년의 기록에는 “목이 늘 건조하고 마르다”며 감기에 걸린 후 반복적으로 발작적 기침을 한 정황이 그대로 있다. 영조 재위 6년의 기록에도 “심장이 후끈거리고 화기(火氣)가 치받아 심한 기침(咳嗽)이 멈추지 않는다. 깊은 밤에도 문을 열어 화기가 내린 뒤에야 잠이 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숙종과 영조의 기침을 멈추게 한 자윤 처방은 바로 달콤 시원한 배였다. 배의 심을 제거하고 꿀을 넣어 쪄서 먹는 증리법과 배의 심을 빼고 백랍 가루 1돈을 넣어서 종이나 무명천에 싸서 구운 외리법을 사용했다. 배의 시원하고 서늘한 성질은 목의 염증을 삭이고 목과 기관지의 점액 분비 기능을 높여 점막을 촉촉하게 코팅하는 약효가 있다. 하지만 배는 찬 성질을 가진 만큼 설사가 잦은 사람은 복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성화된 기침에는 신수(腎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육미지황탕이라는 한방 처방을 썼다. 먹는 물로 비교하면 배와 같은 음식물 처방이 지표수라면 신장에서 분비하는 신수는 지하수에 해당한다. 육미지황탕은 목구멍의 기름인 점액 분비를 활성화시켜 기도의 과민성을 진정시키는 효능을 발휘한다. 실제 영조 8년에는 “신수 부족 증상이 기침을 만성화할 염려가 있다”며 어의가 임금에게 육미지황탕 처방을 강권한 기록이 있다.
겨울철 중국 북경(베이징)의 거리를 배와 생강을 섞어 만든 사탕이나 조청 같은 고(膏)가 완전히 장악한 것도 미세먼지로 인한 ‘기침 지옥’을 이겨내기 위한 중국인들의 고육책임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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