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된 주부 이성희 씨(37)는 ‘축구 하기 전과 후에 뭐가 가장 많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다리를 보여주며 “다리가 탄탄해졌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근육량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축구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고, 삶에서 활기를 찾았다고 했다.
“처음엔 전후반 15분씩 뛰는데 5분도 못 버티고 체력이 바닥이 났죠. 지금은 전후반 다 소화하고도 체력이 남아요. 축구엔 모든 운동 요소가 다 있어요. 짧게 순간적으로 달리면서도 계속 달려야 하죠. 순발력과 지구력이 필요하죠. 몸싸움도 해야 하고, 방향도 전환해야 하고, 패스와 슈팅도 날려야 하고. 종합 체력을 키우는 스포츠입니다.”
이 씨는 축구광인 남편을 따라다니고, 아들 축구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축구와 연을 맺었다. 그는 2015년 9월 결혼한 뒤 신혼여행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갔다. 축구광인 남편이 명문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꼭 봐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네이마르(브라질)가 함께 뛰고 있을 때였다. 그때부터 메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됐다. 이 씨는 지난해부터 축구를 하는 아들을 따라다니다 직접 축구도 시작했다. SFA(Sports For All) 경기도 성남 분당 정자점 어머니 축구단에서 매주 2회씩 공을 차고 있다.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따라 축구장을 다녔어요. 남편이 연예인 축구단 등 여러 팀과 경기를 했죠. 자연스럽게 축구를 좋아하게 됐고, 아들 축구 하는 팀에서 어머니 축구 회원도 모집한다고 해 시작했죠. 완전 신세계였죠. 이젠 축구 없는 삶은 생각하지 못해요.”
운동하고는 담쌓고 살던 그에게 축구는 삶의 활력소가 됐다. 2017년 아들(박선규)을 낳은 뒤 출산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아 필라테스로 몸을 만들고 있기는 했지만 달리며 공을 차는 등 스포츠를 본격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출산 후 허리도 안 좋고 애를 많이 안아주다 보니 어깨도 늘 뻐근해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주 3회 이상 하고 있었다”고 했다. 축구를 시작한 뒤엔 필라테스를 끊었다. 아이를 돌보며 둘 다 하긴 힘들었다.
이 씨는 “축구는 보는 것과 하는 것이 천지 차이였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공을 쫓아다니며 차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갔다”고 했다. 이 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씩 SFA 어머니 축구단에서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올해부터는 프로축구 K리그2 성남 FC에서 개설한 ‘축구학개론’ 심화반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에도 2시간씩 공을 찼다. 축구학개론은 2017년에 시작된 성남 FC의 대표적인 지역 밀착 프로그램이자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축구 클리닉이다. 이 씨는 “여성축구단 회원 중에 성남 FC 서포터스가 있었는데 축구학개론이라는 게 있다고 해서 축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등록했다”고 했다. 성남 FC 축구학개론은 구단 유소년 코치진이 직접 지도하여 참가자의 수준에 맞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코칭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소수 정예로 운영하여 더 섬세하고 심화적인 부분까지 다룬다.
“보통 여자들은 축구를 안 하잖아요. 필라테스나 요가, 수영 등 개인 스포츠를 주로 하죠. 그런데 11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축구를 하니 완전 다른 세상인 겁니다. 일단 어울려 축구 하다 보니 금방 친해져요. 그리고 팀플레이로 골을 만들어냈을 땐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체력도 좋아지고 삶에 활력소도 돼요. 이젠 축구 하는 날이 기다려져요.”
사실 발로 공을 다루는 게 쉽지 않았다. 드리블은 아직도 잘 안된다. 그래도 공 차는 게 즐겁다. 이 씨는 “빨리 공을 더 잘 차고 싶은 마음에 혼자 혹은 회원들과 따로 시간을 내 축구 연습을 하기도 했다. 남편 아이하고 주말에 놀 때도 공을 차기도 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사업 때문에 바빠 공 잘 차는 남편 친구에게 개인 레슨을 받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축구 기본 기술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보며 연습하기도 했다. 그는 “올여름 발목을 다쳐 좀 쉰 적이 있었는데 몸이 근질근질해 힘들었다. 몸이 아픈데도 축구장에 나간다. 도대체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축구가 너무 재밌어서 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축구를 하면서 늘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을 느끼죠. 모든 게 부족해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지금은 공을 잘 다루고 싶어요. 아직 트래핑이나 드리블이 잘 안돼요. 제가 성격이 좀 급한데 서두르다 보면 공이 딴 데 가 있는 거예요. 차분하게 볼을 소유해서 우리 팀에게 안전하게 넘길 수 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SFA 어머니 축구단은 신생팀이라 아직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함께 부대끼며 골을 넣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좋다. 그는 “지고 있어도 함께 ‘으쌰으쌰’하며 똘똘 뭉치는 모습이 너무 좋다. ‘이것도 경험이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며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이 씨는 11월 18일 열린 2023 성남 FC 위민스컵에 축구학개론 심화반으로 출전했다. 축구학개론 심화반은 디비전1에서 준우승했다. 학창 시절 계주 멤버로 뛸 정도로 달리기에는 일가견이 있어 팀에선 오른쪽 날개 공격수를 맡고 있다.
이 씨는 SFA에서는 메시의 10번을, 성남 FC 축구학개론에선 한국축구대표팀 이강인의 19번을 달고 뛴다. 그는 “제가 메시와 이강인이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라운드에서 뛸 때는 가끔 메시와 이강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게 축구의 묘미”라며 웃었다.
“축구를 하면서 항상 기분이 업 돼 있어요. 처지거나 무기력함이 사라졌죠. 늘 생동감이 넘쳐요. 매일 활기차게 살고 있어요. 축구에선 저희끼리 포지션별로 맡은 역할을 정해 ‘골 전략’을 세우고 여러 차례 패스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골을 넣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껴요. 또 저는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올리고 기회가 오면 슈팅도 날리는데 골이 들어가면 그 순간엔 정말 손흥민도 안 부러워요.”
“남편하고 축구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남편은 이제 갓 축구를 시작한 제 실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도 우리 아들은 제가 축구 잘하는 엄마로 생각해요. 그럼 된 거죠. 무엇보다 그냥 공차는 시간이 행복해요. 아직 초보지만 그라운드에 서면 최선을 다합니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요. 한바탕 어울려 땀 흘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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