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日징용 희생자, 81년만에 ‘귀향’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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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서 끌려간 故 최병연씨
타라와섬 日총알받이로 숨져
美, 유해발굴로 기적적 신원 확인
유족 “올해부터 진짜 묘에서 제사”

4일 오후 전남 영광군 문화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고 최병연 씨 유해봉환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고인의
 유해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태평양 타라와섬(현 키리바시공화국)으로 끌려갔던 고인은 1943년 미군과 일본군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중 숨졌다. 영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4일 오후 전남 영광군 문화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고 최병연 씨 유해봉환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고인의 유해 앞에서 헌화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태평양 타라와섬(현 키리바시공화국)으로 끌려갔던 고인은 1943년 미군과 일본군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중 숨졌다. 영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너무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이역만리에서 고향 산천으로 81년 만에 모시게 됐습니다.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4일 오후 2시 전남 영광군 문화예술의전당 대공연장. ‘타라와 강제동원 희생자 고 최병연 님 유해봉환 추도식’에서 최 씨의 둘째 아들 금수 씨(81)는 이렇게 말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최 씨는 금수 씨가 생후 50일이었던 1942년 일제에 의해 남태평양 타라와섬(현 키리바시공화국)으로 끌려갔다. 이후 1년여가 지난 1943년 11월 20∼23일 태평양 관문인 타라와섬을 놓고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에서 최 씨도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타라와 전투가 끝난 후 전사통지서를 받고서야 사망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족들은 최 씨의 마지막 모습을 금수 씨에게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금수 씨는 “아버지가 일제에 끌려가면서 형님(향주 씨)과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머니 잘 모시고 있으라’고 당부했다고 들었다”며 “어머니와 형님은 당시 작별인사를 나눴던 모습을 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전사통지서를 받은 1943년 11월 25일을 최 씨의 기일로 삼았다. 그리고 한동안 집에서 제사를 지내다 수십 년 전부터 영광군 홍농읍 선산에 가묘를 짓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유족들은 이날 유해봉환 추도식을 마치고 해당 가묘에 최 씨의 유해를 안장했다. 한 유족은 “드디어 진짜 묘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울먹였다.

최 씨는 태평양전쟁으로 남태평양에서 숨진 한국인 피해자 중 첫 귀향자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2018년 격전지였던 타라와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타라와 현지에서 발견된 아시아인 유골 152구와 한국인 유가족의 유전자를 대조해 2019년 최 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송환이 지연되다 이날 뒤늦게 성사됐다.

금수 씨는 “내 생애 아버지 유해를 모실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며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를 찾는 것에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유해봉환 추도식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장관은 “긴 세월 생사를 몰라 애타했던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며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보듬는 마음으로 마지막 한 명의 유해가 봉환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남 영광#故 최병연씨#타라와섬#日징용 희생자#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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