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서 끌려간 故 최병연씨
타라와섬 日총알받이로 숨져
美, 유해발굴로 기적적 신원 확인
유족 “올해부터 진짜 묘에서 제사”
“너무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이역만리에서 고향 산천으로 81년 만에 모시게 됐습니다.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4일 오후 2시 전남 영광군 문화예술의전당 대공연장. ‘타라와 강제동원 희생자 고 최병연 님 유해봉환 추도식’에서 최 씨의 둘째 아들 금수 씨(81)는 이렇게 말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최 씨는 금수 씨가 생후 50일이었던 1942년 일제에 의해 남태평양 타라와섬(현 키리바시공화국)으로 끌려갔다. 이후 1년여가 지난 1943년 11월 20∼23일 태평양 관문인 타라와섬을 놓고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에서 최 씨도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타라와 전투가 끝난 후 전사통지서를 받고서야 사망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족들은 최 씨의 마지막 모습을 금수 씨에게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금수 씨는 “아버지가 일제에 끌려가면서 형님(향주 씨)과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머니 잘 모시고 있으라’고 당부했다고 들었다”며 “어머니와 형님은 당시 작별인사를 나눴던 모습을 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전사통지서를 받은 1943년 11월 25일을 최 씨의 기일로 삼았다. 그리고 한동안 집에서 제사를 지내다 수십 년 전부터 영광군 홍농읍 선산에 가묘를 짓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유족들은 이날 유해봉환 추도식을 마치고 해당 가묘에 최 씨의 유해를 안장했다. 한 유족은 “드디어 진짜 묘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울먹였다.
최 씨는 태평양전쟁으로 남태평양에서 숨진 한국인 피해자 중 첫 귀향자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2018년 격전지였던 타라와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타라와 현지에서 발견된 아시아인 유골 152구와 한국인 유가족의 유전자를 대조해 2019년 최 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송환이 지연되다 이날 뒤늦게 성사됐다.
금수 씨는 “내 생애 아버지 유해를 모실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며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를 찾는 것에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유해봉환 추도식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장관은 “긴 세월 생사를 몰라 애타했던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며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보듬는 마음으로 마지막 한 명의 유해가 봉환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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