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응급 시스템 마비 수준… 의료수가 대폭 올려 공백 메꿔야[기고/이기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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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회장
이기형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회장
예상은 했지만 결국 우려하던 일이 또 벌어졌다. 2024년 상반기 전공의 전기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8.6%로 진료 과목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작년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전공의 수련병원 60곳 중 배정된 정원을 채운 곳은 고작 3개 병원에 불과했으며 42개 병원은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고려대의료원 3개 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정원은 9명이지만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제 정년퇴임을 1년 앞둔 원로 교수로서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일말의 책임감과 함께 참담함을 느낀다.

다가오는 2024년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상황은 정말 심각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기 전에 들어왔던 전공의 4년 차들이 모두 나가게 되면 몇몇 병원을 제외한 전국의 대학병원들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불과 1∼2명, 심지어 아예 없는 병원도 생길 것이다.

현재도 전공의 대신 교수들이 입원 환자와 응급 환자를 위해 돌아가며 당직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그나마 몇 명 있던 전공의마저 줄게 돼 상황이 더욱 극심해지게 된다. 대학병원 교수는 진료와 수술 외에도 미래를 위해 의대생을 교육하고 연구해야 하는 의무도 진다. 최근 교수가 당직 근무까지 하게 되면서 가중되는 업무를 견디다 못해 결국 교수직을 내려놓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요즘 1차 의료기관에서 소아 환자 진료를 위한 소위 ‘오픈런’도 문제지만 결국 상급종합병원의 응급 환아 및 중환자 진료에도 공백이 생기며 중증 소아 환자 진료 시스템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에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점점 심해지는 초저출산 현상으로 불투명한 미래, 턱없이 낮은 소아 의료 수가, 중환자를 돌보는 필수 의료 진료에 수반되는 의료 소송과 심적 부담 때문이다. 또한 부모의 높은 기대치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힘들게 하는 일부 육아 커뮤니티도 영향을 끼친다. 간혹 소아청소년과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려고 하는 의대생이 있어도 그 부모가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며 말린다고 한다.

물론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과 육아 커뮤니티는 사회·시대적인 현상이니 당장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가장 실효적인 방법은 소아 의료 수가를 대폭 올려서 소아 환자가 줄어든 만큼 부족한 부분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고 난 후 장래가 불안하지 않도록 1차 의원급 소아청소년과 운영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나아가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도 부족한 전공의 대신 진료 전문의 중심 진료 체제로 전환되려면 지금보다 많은 인력 보강과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9월 소아 의료 보완 대책으로 소아 야간 진료 수가 인상, 수련 보조 수당 지급, 소아 연령 가산 확대 등 대책을 내놨지만 전공의 지원에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 강도가 매우 미약했고 이제 더욱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의료 현장에 실제 투입되려면 의대 6년, 전공의 수련 4년, 남자들은 병역의무까지 포함하면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소아 환자의 진료 공백은 몇 년씩 비워둘 수 없다. 우리나라 저출산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막상 우리 아이가 아플 때 병원을 찾아 헤매고 제대로 진료받지 못한다면 과연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 미래 세대, 나아가 미래 대한민국의 건강을 책임지는 소아청소년 진료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실질적 대책 외엔 어떠한 저출산 대책도 무상하다.

#헬스동아#건강#의학#소아 응급 시스템#의료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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