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서 흔히 마시는 생수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플라스틱’이 1리터 기준 약 24만 개나 들어있다는 연구결과가 미국 학계에서 나왔다. 특히 나노 플라스틱은 제조업체가 생수를 병에 담기 전에 이미 유입되며, 수돗물이나 정수기 물을 마셔도 완전히 해결하긴 어렵다고 경고했다. 생수 속 나노 플라스틱 문제는 이전 연구에서도 지적돼 왔지만, 건강에 해로운 플라스틱의 양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밝혀낸 건 처음이다.
● ‘모발의 100분의 1’ 크기 플라스틱 24만개
미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8일(현지 시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에서 생수병에 든 나노 플라스틱의 양과 성분을 분석한 결과를 이같이 공개했다. 기존보다 훨씬 진화한 첨단레이저 현미경 기술과 특수 알고리즘을 활용해 구체적인 수치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미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생수 브랜드 3가지를 고른 뒤 각각 5개씩 표본을 조사했다. 그 결과 1리터당 평균 약 24만 개의 입자를 발견했다. 브랜드에 따라 11만 개부터 많게는 40만 개가 든 경우도 있었다. 해당 입자의 90% 이상은 나노 플라스틱으로 파악됐다.
나노 플라스틱 크기는 보통 1μm(1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미만.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미세 플라스틱(5mm 미만)’보다도 훨씬 작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아 혈관을 타고 세포와 뇌, 태반까지 침투할 수 있다. 공동 연구자인 웨이 민 교수는 “플라스틱 이슈에서 중요한 것은 질량이 아니라 크기”라며 “입자가 작을 수록 인체 내로 더 쉽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물은 유리잔으로 마시는 게 안전”
이번 연구에서는 성분이 밝혀진 나노 플라스틱 가운데 합성섬유 나일론의 소재로 알려진 폴리아미드(PA)가 가장 많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조사 대상이던 생수 브랜드 2가지는 PA의 비중이 각각 63%, 49%에 이르렀다. 나머지 한 브랜드는 19%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생수는 용액 간 농도 차를 이용한 ‘역삼투압’ 방식으로 물을 정화한다. 이 과정에서 내구성이 뛰어난 PA는 물을 거르는 필터 소재로 쓰인다. 다시 말해, 물 속에 들어있는 나노 플라스틱이 물병이나 뚜껑 등에서 떨어져 나온 게 아니라 생산 공정에 유입된 것들이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AP통신에 “이번 연구를 계기로 연구 참가자들은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덜 마시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베이잔 얀 연구원은 “지금껏 나노 플라스틱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독성 연구도 추측 수준에 머물러왔다”며 “이번 연구로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의 창을 열게 됐다”이라고 자평했다.
관련 연구가 이제야 궤도에 오른 만큼 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제생수협회는 논문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나노 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소비자에게 불필요하게 겁을 주는 내용이 많다”고 반발했다.
2018년 생수 플라스틱 문제를 처음 제기한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베런드 칼리지 쉐리 메이슨 교수는 미 CNN방송에서 “나노 플라스틱 노출을 줄이려면 수돗물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물을 유리나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에 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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