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후드 애로’ 주현정 “양궁의 갈증, 골프로 풀어요”[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4일 2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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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주현정은 자신의 이름을 딴 양궁클럽을 운영하며 양궁 저변 확대에 애쓰고 있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08 베이징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주현정은 자신의 이름을 딴 양궁클럽을 운영하며 양궁 저변 확대에 애쓰고 있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주현정(42)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박성현, 윤옥희와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 큰 화제를 모았던 건 선수 생활 말엽인 2014년이었다.

그해 콜롬비아에서 개최된 세계양궁연맹 1차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비공식 연습에서 주현정은 과녁 한가운데 명중시킨 화살 끝을 다른 화살로 꿰뚫어 버렸다. 두 개의 화살이 이어져 기다란 한 개의 화살이 됐다. 0.0058%의 확률로 나온다는 일명 ‘로빈후드 애로’였다. 정작 주현정은 “보통 사람들은 신기해하지만 수천, 수만 발을 쏘는 한국 여자 양궁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라면서 “당시도 처음 든 생각은 ‘에이, 아까운 화살 하나 버렸네’였다”며 웃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같은 해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출전권을 후배 이특영에게 양보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는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에 방해가 돼선 안 되었기에 내 욕심을 버렸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한국 여자 양궁은 그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2015년 은퇴한 그는 현재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주현정 양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100명 가까운 수강생 중 70% 정도는 학생이고, 나머지 30%는 성인이다.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그는 “많은 분이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몇몇 주부 수강생은 ‘가슴이 모처럼 다시 뛰는 것 같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주현정 양궁클럽’이 짧은 시간 안에 자리 잡게 된 데는 한국 양궁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러진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금메달 4개를 따냈다. 이후 “양궁을 배우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수강생이 늘면서 그는 지난해 공간이 훨씬 넓은 현재 장소로 이전했다.

그는 양궁 메달리스트들의 모임인 ‘명궁회’ 회장도 맡고 있다. 수시로 초등학교 등으로 재능기부를 다니고, 지역에서 열리는 생활체육 대회도 살뜰하게 챙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골프를 통해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선수 시절 여자 선수 중 유독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던 그는 ‘장타자’다. 드라이버로 평균 180m, 멀리 칠 때는 220m를 보낸다. 그는 “지금도 양궁이 그립지만 시위를 당길 때마다 통증이 찾아온다. 양궁의 갈증을 골프로 푼다”며 “두 종목 모두 멘털이 중요하다. 침착하게 준비하고, 힘을 빼고 치거나(골프) 시위를 놓아야 한다(양궁)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수영과 볼링 등을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보라”는 말도 들었을 정도다. 이제 그 열정을 골프에 쏟아보려 한다. 80대 중반을 친다는 그는 “양궁과 골프 모두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도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양궁 저변을 확대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한국 양궁이 지금처럼 세계 정상을 유지하려면 엘리트 체육뿐만 아니라 생활체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선수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생활체육을 통해 한국 양궁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로빈후드 애로#주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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